[주말 객석에서] 이순재·전무송 명연기 '활활'

  • 신정선 기자

입력 : 2012.04.16 00:10

'세일즈맨의 죽음' 번안한 연극 '아버지'

이 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뜨거운 연극은 '세일즈맨의 죽음'(아서 밀러 作)이다. 영화 '졸업'(1967)의 감독 마이크 니콜스가 연출하고,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2006)을 받은 필립 시모어 호프만이 주인공 윌리를, 오는 7월 개봉할 블록버스터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앤드루 가필드가 장남 비프를 맡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열연을 보여준다. 뉴욕타임스 등 평단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관객도 몰려들고 있다.

지난 13일 개막한 연극 '아버지'(연출 김명곤)는 브로드웨이를 들썩이게 한 '세일즈맨'을 2012년 한국으로 옮겨왔다. 대공황 직전인 '1928년'을 가장 아름답던 시절로 기억하는 윌리는 한국에 와서 '푸른 바다'를 꿈꾸는 외판원 장재민이 됐다. 명배우 이순재전무송이 주인공 역을 번갈아 한다. 다른 배역은 모두 한 배우가 맡았다. 자연히 작품을 보는 맛의 상당 부분이 이순재와 전무송의 해석에서 나온다. 두 사람이 각각 출연한 14일 두 차례 공연을 모두 보고, 두 배우의 '아버지'를 가장 잘 드러낸 장면을 골랐다.

아서 밀러의‘세일즈맨의 죽음’을 번안한 연극‘아버지’에서 각기 다른 색깔을 보여준 배우 이순재(사진위)와 전무송. /아리인터웍스 제공

◇이순재―"난 니들을 먹여 살린 장재민이야!"

그의 '아버지'는 '쾅' 소리에서 나온다. 아들뻘 되는 사장에게 해고 통보를 받고 책상을 내리칠 때, 그의 고뇌가 파편 튀듯 객석으로 튕겨져 나온다. "난 쓰레기가 아냐!"라는 그의 외침은 힘이 넘쳐 오히려 공허하고 처연하다. 한때 최고의 외판원이었으나 이제는 모두에게 짐이 된 한 남자가 그의 목소리를 통해 울부짖는다.

◇전무송―"이제는 쓸려나간 며루치떼를 생각하자"

그가 연민이 가득한 눈빛으로 마종기의 시 '며루치는 국물만 내고 끝장인가?'를 읽을 때, 이 땅의 모든 아버지가 함께 운다. 남해 물살을 가르는 은빛 비늘의 며루치떼를 노래하는 시구를 전무송만큼 절절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배우를 찾기는 힘들 것이다.

두 배우의 명연기가 돋보이기는 하지만, 작품은 적지 않은 아쉬움을 남긴다.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허상과 현실을 가르는 상징성을 품고 있던 세트의 미학은 사라지고, 단순히 공간을 분할하는 집안 풍경을 보여주는 데 그쳤다. 원작의 '레퀴엠' 장이 빠지고 아내의 집안 독백만으로 처리돼 "내 장례식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몰려올 것"이라는 아버지의 장담이 짓뭉개지는 쓸쓸한 장례식의 비극적 여운이 크게 반감됐다. 88만원 세대 아들딸의 고민을 다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원작의 차남 대신 딸을 등장시켰으나, 애교 춤을 추며 눈웃음을 날리는 기능적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29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02)515-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