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울시향 교향악축제] 한층 매서운 활 선보인 독주 '北美투어 출정식' 방불케 해

  • 김성현 기자

입력 : 2012.04.13 23:50

북미(北美) 투어를 앞두고 1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울시향(지휘 정명훈)의 음악회는 마치 '출국 신고식'이나 '출정식' 같은 열기로 가득했다. 한국 교향악단이 해외 연주회를 앞두고 국내 팬들에게 먼저 선을 보인다는 건, 예전에는 미처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서울시향의 유럽 투어(2010~11)와 일본 투어(2011~12) 등 잇따른 해외 원정으로 이조차 일상적인 풍경이 되고 있다.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 이날 전반부에서는 두 가지 역할 변신이 눈에 띄었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과 서울시향의 악장을 겸임(兼任)하고 있는 스베틀린 루세브는 모처럼 독주자로 나서 시벨리우스의 협주곡을 협연했다. 반대로 솔리스트로 활동 중인 첼리스트 송영훈은 서울시향의 북미 투어에 합류하기에 앞서 객원 수석으로 자리에 앉았다.

1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교향악축제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브와 서울시향(지휘 정명훈)이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제공
지휘자 정명훈이 "악장으로 태어난 사람"이라고 부르며 두터운 신뢰를 보내는 루세브는 모처럼 무대 한복판에 서자, 한층 강렬하면서도 매서운 활 끝을 선보였다. 차가운 아이스크림에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부은 듯, 북구의 우수(憂愁)와 작곡가 특유의 애상이 공존하는 것이야말로 이 협주곡의 매력이다. 특히 3악장 도입부에서 그는 지휘자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며 온몸으로 리듬감을 만들어낸 데 이어서, 파가니니와 바흐의 독주곡까지 넉넉하게 앙코르로 곁들였다. 반대로 첼로 수석 자리에 앉은 송영훈은 1악장 바이올린 독주 직전에 지휘자의 손끝을 주시하며 끝까지 저음을 쥐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후반부 연주곡인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모음곡'은 북미 투어의 주요 메뉴다. 세련되고 감각적이며, 화려하고 다이내믹한 작품의 성격은 서울시향의 음색과도 잘 맞아떨어져서 영민한 프로그램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곡의 절정에 해당하는 '카슈체이 왕과 죽음의 춤'에서 튜바가 잠시 제자리를 찾지 못하자 악단의 집중력도 더불어 흐트러졌다. 반면 숨죽여 출발했다가 관현악의 색채감을 극대화한 '피날레'는 분명히 눈부셨다. 무한 반복 속에서도 반복과 변형의 재미를 빚어내는 라벨의 '볼레로'에서는 종결부에 마치 건물이 무너져 내리듯 망가지는 재미가 덜해서 아쉬웠다. 서울시향은 15일 캐나다 밴쿠버를 시작으로 16일 미국 시애틀, 18일 샌타바버라, 19일 로스앤젤레스로 강행군을 펼친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