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ABC] '머리카락 묻은 활'이라고? 음반 속지번역 장난입니까

  • 김성현 기자

입력 : 2012.04.11 23:35

hair를 머리카락으로 졸속에 엉터리 속출, 차라리 해설이 나아

클래식 음반에 적혀 있는 해설을 흔히 '속지'나 '내지'라고 부릅니다. 음악에 빠져들고 싶어하는 이들에게는 친절한 안내자가 되지요. 하지만 최근 국내 라이선스로 소개된 클래식 음반에서 졸속·엉터리 번역이 속출해 말썽입니다.

베를린 필의 오보에 수석 연주자인 알브레히트 마이어의 독집 음반에서 '연애시(戀愛詩)'를 '연예시'로, 피아니스트 랑랑의 리스트 독주회 영상에서 공연 장소였던 라운드하우스를 '런던 북부(north London)'에서 '런던 남부'로 실수하는 건 차라리 애교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이 녹음한 찰스 아이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음반에서 "아이브스는 가문 대대로 내려온 지역사회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비즈니스맨으로서의 능력을 계발하는 데 주력했다"는 문장에 이르면 해독이 불가능한 암호가 되고 맙니다. 실은 간단히 말해서 "지역에 기반을 둔 가업(家業)에 투신했다"는 의미입니다.

오역·졸속 번역이 적지 않은 건, 우선 라이선스 음반의 제작 기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외국과 국내에서 동시 발매되는 경우에는 번역에 1주일 안팎의 기한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감 시한 맞추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지요. 또한 음반당 번역료는 7만~8만원가량에 불과합니다. 수준 높은 번역이 나오기 힘든 구조인 것이죠.

바이올린 활의 '털'을 '머리카락'으로 오역한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아 피셔의 음반 내지.
그렇다고 해도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아 피셔의 파가니니 독주곡 음반 해설에서 "학습을 목적을 둔(학습에 목적을 둔)" "바이올리니스트라던가(라든가)" "채무 관계를 완수하기 위해('약속을 지키기 위해')" 같은 표현에 이르면 난감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피셔의 또 다른 독집 음반 가운데 바이올린 활의 '털(hair)'을 '머리카락'으로 번역한 대목에서는 솔직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지경입니다. 이런 번역은 클래식 음악의 길잡이는커녕, 장벽이나 걸림돌입니다.

대안은 없을까요. 팝 음악의 경우에는 성음과 지구 레코드, 오아시스 등 국내 옛 음반사에서 라이선스 음반을 내던 시절부터 영어 해설을 번역하기보다는 국내 팝 칼럼니스트가 새로 집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디스크자키(DJ)이자 팝 칼럼니스트 전영혁씨의 밥 딜런 음반 해설이나 팝 칼럼니스트 성문영씨가 맛깔스럽게 썼던 록 그룹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의 음반 해설이 대표적입니다.

짧은 제작 공정이나 낮은 처우 때문에 졸속 번역이 우려된다면, 차라리 한국의 클래식 음악 칼럼니스트들이 새롭게 써보는 건 어떨까요. 이들의 해설을 읽은 아이들이 훗날 또 한 명의 음악 애호가로 자라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