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hwangap)' 단어로 美 공연, 이민가족 단절을 말하다

  • 신정선 기자

입력 : 2012.04.12 03:31

'아메리칸 환갑' 쓴 로이드 서, 美서 호평받은 연극 국내 초연
한국갔던 아버지 15년만에 귀환… 前부인·삼남매의 반응 제각각
아버지는 외친다 "다시 태어났다"

아버지가 돌아왔다. 15년 만이다. 미국에 가족을 남겨두고 혼자 한국으로 돌아갔다가, 예고도 없이 왔다. 그것도 환갑 전날에. 식구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전 부인 메리는 마지못해 반기고, 장녀 에스더는 섭섭함이 역력하다. 장남 데이비드는 외면하고, 차남 랄프는 아버지를 위해 '아메리칸 환갑'이라는 시를 쓴다.

지난달 30일 국내 초연 개막한 연극 '아메리칸 환갑'(American Hwangap·연출 윤광진)은 한국계 미국 이민 가족의 단절과 소통을 이야기한다. 200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초연해, 2009년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개성 넘치는 인물의 대화가 사랑스러운 작품"이라고 호평했다.

작품을 쓴 로이드 서(37)는 한국계 미국인. 초연을 보기 위해 잠시 한국에 온 그를 최근 대학로에서 만났다. "한국에 제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꿈이고 목표였습니다. 한국 관객이 봐주신다고 생각하니 설레고 행복합니다."

그는 희곡 '만리장성 이야기' '세상의 행복한 종말' 등으로 미 극단에서 주목받는 극작가다. 대구 의사였던 아버지는 1972년 미국 인디애나로 건너갔다. 3년 후 그가 태어났다. 인디애나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그는 2005년 예순이 된 아버지가 '환갑잔치를 한다'는 말을 듣고 작품을 구상하게 됐다. "60세를 따로 기린다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어요. 그 해는 한국 독립 60주년이기도 했죠. 한국의 환갑이자 아버지의 환갑이 가진 의미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로이드 서는 떡국과 갈비로 차린 부친의 환갑상을 바라보며 "환갑을 맞은 한 인간의 회한, 제2의 인생을 살아간다는 의미를 파고들게 됐다"고 말했다. 단어의 울림과 의미를 살리고 싶었던 그는 미국에서 공연을 올리면서 '환갑(Hwangap)'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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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이민 가족의 단절과 소통을 다룬‘아메리칸 환갑’의 작가 로이드 서는“한국 관객에게 작품을 선보이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공연장인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이민 가족을 다룬 연극에서 흔히 보여줄 법한 전형성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작품의 호소력이 빛난다. 배경은 미국이지만, 한국의 어느 가족이나 나눌 법한 대화가 오간다. 그는 "미국 사회에서 한국인이 겪는 정체성의 충돌은 너무나 자주 다뤄진 진부한 주제"라며 "미국 내 한국인으로서가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연결'에 대한 갈망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버지라 힘들고, 아들은 아들이라 외롭습니다. 미국이나 한국이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누구나 이 넓은 우주에서 단 하나의 존재로서 외로움을 갖고 있는 것이죠."

로이드 서가 강조하는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연결'은 전화를 통해 그려진다. 통화가 끝났어도 전화기를 내려놓지 못하는 아버지, '굿바이'라고 말하고도 전화를 끊지 못하는 아들이 나온다. 아버지는 극 속에서 "나는 다시 태어났다!"고 외친다.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 장두이씨는 "나도 올해 환갑이 됐으니, 이 무대가 내게는 환갑 선물"이라고 말했다.

국내에 선보이게 된 것은 연출가 윤광진씨의 안목이었다. 윤씨는 미국의 한 잡지에 실린 로이드 서의 인터뷰와 극본을 보고 이메일로 연락을 취해 2년 가까이 국내 공연에 공을 들였다. 로이드 서는 "제 아버지 같은 이민 1세대는 연고도 없는 땅에서 꿈을 심기 시작했다"며 "2세대인 저는 연극 무대를 통해 아버지의 꿈을 완성하겠다"고 말했다.

▲연극 '아메리칸 환갑' 대학로 게릴라극장, (02)763-1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