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객석에서] 말러 교향곡 1·5번… 첫날엔 과한 욕심, 둘째 날엔 안정감

  • 김성현 기자

입력 : 2012.04.08 23:43

로린 마젤의 '英 필하모니아'

기계처럼 정확한 박자 감각, 자로 잰 듯이 빈틈없는 동작과 암보력(暗譜力). 지휘자 로린 마젤(82)을 따라다니는 수식어이지만 이런 매력이 작곡가 말러의 교향곡과 잘 어울리는지는 사실 확실치 않았다.

체코의 변방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오스트리아와 미국에서 활동했던 이 작곡가의 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란 서로 이질적 요소들이 한데 뒤엉켜 있는 혼합적 성격에 가깝기 때문이다. 지휘자의 장점과 작곡가의 매력이 시너지 효과를 빚을지, 균열을 일으킬지 지켜보는 것이야말로 지난 7~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던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지휘 로린 마젤)의 내한 공연을 지켜보는'관전 포인트'가 됐다.

첫날과 둘째 날 연주의 명암(明暗)은 크게 갈렸다. 말러의 교향곡 5번을 택했던 첫날 음악회의 1악장 초반부터 마젤은 한없이 박자를 늘어뜨리며 애써 감정을 절제했다. 언제나 악단에 '나를 따르라'고 외치듯이 절도 있는 해석을 보여주던 지휘자의 옛 모습을 기억하는 관객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1악장 중반 애수 어린 현악의 흐느낌부터 한껏 죄어두었던 감정을 폭발시키기 위한'다목적 포석'이었지만 금관과 현악 사이의 부조화가 지휘자의 발목을 잡았다.

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지휘 로린 마젤)의 내한공연에서 한국계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가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을 협연하고 있다. 서정적인 2악장에서 섬세하고 가녀린 현(絃)이 돋보였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1악장의 호쾌한 트럼펫 독주와 3악장의 탄탄한 호른은 고군분투(孤軍奮鬪)를 벌였지만 채 썰듯이 정갈하게 다듬어내지 못한 앙상블은 감정의 불완전 연소로 이어졌다. 극단적으로 비칠 만큼 박자와 강세의 이완과 수축을 거듭하면서 작품에 내재한 드라마틱한 요소들을 모두 드러내고자 했던 지휘자의 구상은 무대 위에서 그대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풍성한 종합선물 세트에서 정작 어느 과자가 맛있었는지는 기억에 남지 않는 것처럼 지나치게 많은 걸 욕심 낸 나머지 초점을 잃은 건 아닌지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반면 같은 작곡가의 교향곡 1번을 택한 둘째 날 연주회는 지휘자와 악단의 숨어 있던 매력을 흠씬 느낄 수 있는 호연(好演)이 됐다. 오케스트라는 과한 욕심을 덜어내는 대신 약속된 플레이에 충실하면서 탄탄한 조직력과 안정감 있는 앙상블을 보였다. 특히 애수 어린 흥취가 묻어나는 3악장에서는 현악을 다잡는 노(老)지휘자의 노련함이 돋보였고, 모든 것을 폭발시켜야 하는 마지막 4악장에서도 절도 있는 박자 감각과 탄탄한 금관 덕분에 줄곧 자신감 있게 몰아칠 수 있었다.

어느새 여든을 훌쩍 넘긴 마젤도 중간 중간 객석까지 몸을 돌리며 지휘봉을 휘두르고, 절정에서는 뒷발까지 들면서 악단을 독려했다. 짧은 기간 내에 강행군을 펼쳐야 하는 순회공연의 특성상 연주회 간 편차는 불가피하다고 해도 사뭇 다른 이틀간의 풍경은 아쉬움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