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3.28 23:44
이해랑연극상 수상한 한태숙
연극은 인간 이면 파헤치는 자학, 그래도 "봐도 또 보고 싶다" 評
객석 끝에서 보며 스트레스 해소… 관객 어깨의 미세한 파동 행복해요
그와 함께 작업한 연극인의 증언은 이렇다. "이렇게 모질고 독할 수가 있나." "같이 연극하면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 관객 의견도 이렇다. "속을 후벼 파는 것 같다." "암담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22회 이해랑연극상 수상자인 한태숙(62)씨는 자타가 인정하는 '악독한 연출가'다. 그런데도 "나를 써달라"는 배우들이 줄을 서고, "봐도 또 보고 싶다"는 관객이 넘쳐난다.
제22회 이해랑연극상 수상자인 한태숙(62)씨는 자타가 인정하는 '악독한 연출가'다. 그런데도 "나를 써달라"는 배우들이 줄을 서고, "봐도 또 보고 싶다"는 관객이 넘쳐난다.
지난 23일 광화문에서 만난 그에게 '악독하다고 악명이 높은데도 인기 있는 이유'를 물으니 "원래 연극은 자학"이라고 했다. "고통 자체가 의도는 아니에요. 인간의 이면을 파헤치고 싶은 것이죠. 연극은 전력투구를 안 하면 제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요. 배우나 관객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함께 겪으며 끝까지 가보는 동질감을 느끼고 싶기 때문 아닐까요." '명성'과는 달리, 수줍고 조용한 말투의 한씨는 앞서 전화로 수상 소식을 전했을 때도 차분하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다. 그는 15회 때 특별상을 수상한 고(故) 강유정(1932~2005)를 제외하고, 여성 연출가로는 첫 수상자다.
1950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대입 재수를 준비하던 1969년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유덕형 연출의 '자아비판'을 보고 "거인 발자국이 가슴 위로 지나간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난생처음 보는 장르에 대한 희열과 환희가 밀려왔어요. '저게 내 우주다' 라고 느꼈죠." 집안 반대를 독하게 뚫고 서울예대 연극과에 들어갔다. 연출 데뷔는 1976년 '덧치맨'이었다. 그런데 연극은 '밥'이 안 됐다. '덧치맨'의 배우 장두이가 출연료로 받은 게 쌀 한 말이던 시절이다. "이러다 노상에서 굶어 죽겠다"는 생각이 들던 1981년, 일간지 신춘문예에 희곡이 당선됐다. 방송사에서 "작가로 오라"는 연락이 왔다. 방송 대본을 쓰며 11년을 일했다.
두둑한 월급을 받으니, 이번엔 마음이 배고파졌다. 속이 타들어갔다. 사정을 아는 극작가 정복근씨가 "이러다 사람 버리겠다"며 "연극으로 가라"고 권했다. 연희극회 출신인 남편 장제훈(64)씨도 힘을 보탰다. "돈은 내가 벌 테니, 당신은 연극해." 그래서 한씨가 가장 고마워하는 곳이 남편 직장인 서울랜드다.
1950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대입 재수를 준비하던 1969년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유덕형 연출의 '자아비판'을 보고 "거인 발자국이 가슴 위로 지나간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난생처음 보는 장르에 대한 희열과 환희가 밀려왔어요. '저게 내 우주다' 라고 느꼈죠." 집안 반대를 독하게 뚫고 서울예대 연극과에 들어갔다. 연출 데뷔는 1976년 '덧치맨'이었다. 그런데 연극은 '밥'이 안 됐다. '덧치맨'의 배우 장두이가 출연료로 받은 게 쌀 한 말이던 시절이다. "이러다 노상에서 굶어 죽겠다"는 생각이 들던 1981년, 일간지 신춘문예에 희곡이 당선됐다. 방송사에서 "작가로 오라"는 연락이 왔다. 방송 대본을 쓰며 11년을 일했다.
두둑한 월급을 받으니, 이번엔 마음이 배고파졌다. 속이 타들어갔다. 사정을 아는 극작가 정복근씨가 "이러다 사람 버리겠다"며 "연극으로 가라"고 권했다. 연희극회 출신인 남편 장제훈(64)씨도 힘을 보탰다. "돈은 내가 벌 테니, 당신은 연극해." 그래서 한씨가 가장 고마워하는 곳이 남편 직장인 서울랜드다.
다시 데뷔를 한 것이 1994년이었다. 그때부터 그에게는 '중고 신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당시 극단 학전 김민기 대표의 도움으로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를 올렸다. 두 자매의 질투와 애증을 다룬 작품으로, 배우 박정자 손숙이 출연했다. 그 후 '레이디 맥베스'(1998) '서안화차'(2003) 등으로 인간의 감춰진 본성을 치열하게 파고들었다.
2010년 국립극단 법인화 이후 나온 첫 작품 '오이디푸스'는 대중과 평단 모두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공연장인 명동예술극장이 문자 그대로 입추의 여지 없이 미어터졌다.
무대라는 신전(神殿) 앞에 그가 가진 모든 것은 제물이다. 한번은 한씨의 딸이 하교해 집에 오더니 "우리 집 마루가 없어졌다"고 소리를 쳤다. "카펫이랑 식탁이랑 장롱이 다 없어졌다!" 한씨가 가재도구를 몽땅 공연장에 갖다 뒀던 것이다. 남편의 옷도 자주 바쳐진다. "출근할 때 입고 갈 재킷과 바지가 없다"고 하는 남편에게는 "배우에게 입히면 당신에게 영광으로 알라"고 말한다. 3대째 가보(家寶)로 물려 내려오던 명주 한 필도 레이디 맥베스 의상에 썼다.
2010년 국립극단 법인화 이후 나온 첫 작품 '오이디푸스'는 대중과 평단 모두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공연장인 명동예술극장이 문자 그대로 입추의 여지 없이 미어터졌다.
무대라는 신전(神殿) 앞에 그가 가진 모든 것은 제물이다. 한번은 한씨의 딸이 하교해 집에 오더니 "우리 집 마루가 없어졌다"고 소리를 쳤다. "카펫이랑 식탁이랑 장롱이 다 없어졌다!" 한씨가 가재도구를 몽땅 공연장에 갖다 뒀던 것이다. 남편의 옷도 자주 바쳐진다. "출근할 때 입고 갈 재킷과 바지가 없다"고 하는 남편에게는 "배우에게 입히면 당신에게 영광으로 알라"고 말한다. 3대째 가보(家寶)로 물려 내려오던 명주 한 필도 레이디 맥베스 의상에 썼다.
한씨는 관객을 위한 어설픈 위로보다 몰아치는 통증을 선택한다. "어떤 분은 '레이디 맥베스'를 보고 토했대요. 전 그 말 듣고 뒤에서 악마적으로 웃었어요. 스스로 '잘했다' 했어요. 속에서 뭔가 끓어올랐으니까 토한 것이죠. 그런 시원함과 카타르시스를 주는 게 연극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을 위한 위안도 오직 연극에서만 구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가 "대본을 새로운 장소에서 새 마음으로 읽어볼 기회라서"다. 객석 제일 끝자리에서 관객을 바라보는 게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무대의 가장 큰 매력은 격정인 것 같아요. 철학이나 심리는 문학에서도 파헤칠 수 있죠. 관객 어깨의 미세한 파동을 느낄 때 행복해요. 단순한 소통 이상의 넘치는 격정을 전하면 제 작품은 성공한 거죠."
그는 최근에 큰 병을 이겨냈다. 디스크인 줄 알았는데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이었다. "단백질이 발광을 하는 병인데 지금은 괜찮아졌다"고 했다. "아프고 나서인지, 나중에 따뜻한 작품을 하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큰 변화다.
이해랑연극상 수상 기념 책자를 만들기 위해 과거 사진을 부탁했더니 한씨는 "죄다 버리고 없다"고 했다. "흔적을 남기는 게 싫어요. 하긴 연극도 잃어버리고 사라져버리는 매력이 있죠. 하지만 사라지기에 오히려 영원하다고 생각해요. 언제고 다시 만들어지고 회복되니까요."
자신을 위한 위안도 오직 연극에서만 구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가 "대본을 새로운 장소에서 새 마음으로 읽어볼 기회라서"다. 객석 제일 끝자리에서 관객을 바라보는 게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무대의 가장 큰 매력은 격정인 것 같아요. 철학이나 심리는 문학에서도 파헤칠 수 있죠. 관객 어깨의 미세한 파동을 느낄 때 행복해요. 단순한 소통 이상의 넘치는 격정을 전하면 제 작품은 성공한 거죠."
그는 최근에 큰 병을 이겨냈다. 디스크인 줄 알았는데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이었다. "단백질이 발광을 하는 병인데 지금은 괜찮아졌다"고 했다. "아프고 나서인지, 나중에 따뜻한 작품을 하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큰 변화다.
이해랑연극상 수상 기념 책자를 만들기 위해 과거 사진을 부탁했더니 한씨는 "죄다 버리고 없다"고 했다. "흔적을 남기는 게 싫어요. 하긴 연극도 잃어버리고 사라져버리는 매력이 있죠. 하지만 사라지기에 오히려 영원하다고 생각해요. 언제고 다시 만들어지고 회복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