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세트 관현악 없이… 간결하고 빨랐다

  • 김성현 기자

입력 : 2012.03.18 23:35

[주말 객석에서] 오페라 '마술피리'

막이 오르기 전 무대 한구석에는 피아노 한 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고, 복판에는 흡사 갈대밭처럼 나무 막대가 드문드문 꽂혀 있다. 지난 15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막 오른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별도 오케스트라 반주나 무대 세트 없이 출연진은 이 막대를 부지런히 옮겨서 주인공을 감금하고 풀어주며 극적 전개에 맞춰 다용도로 활용했다. 올해 87세를 맞은 '현대 연극의 거장' 피터 브룩(Peter Brook)은 국내 무대에서 이렇듯 뱀도, 마법도, 화려한 무대 세트나 심지어 관현악도 없는 '소극장판 마술피리'를 선보였다.

서곡부터 코드 몇 개로 오케스트라를 대체하는 피아노 연주에는 간결하면서도 서정성이 깃들어 있었다. 곧이어 타미노 왕자가 위험에 처하는 첫 장면부터 연출가 브룩은 세 시녀와 소년들, 합창단 등 부수적 캐릭터를 빼버리고, 피아노 반주만을 벗 삼아 노래를 과감하게 축약하거나 변형하면서 드라마 진행 속도를 높였다.

피터 브룩이 연출한 모차르트의 오페라‘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소프라노 레일라 벤암자)이 딸 파미나(렌카 투르차노바)를 포옹하고 있다. /LG아트센터 제공
'피가로의 결혼'이나 '돈 조반니' 등 이탈리아어로 부르는 작곡가의 주요 오페라와는 달리 '마술피리'는 독일어 노래와 대사가 뚜렷하게 구분된 음악극(Singspiel) 형식을 띠고 있다. 이 특징에 착안해서 연출가는 트라이앵글 하나로 '마법의 종'을 대신하고, 담요 하나만으로 객석에 울음을 불어넣으면서 압축과 생략으로 간결미를 살렸다.

'모차르트에 바탕을 둬서 브룩이 자유롭게 각색한 마술피리'라는 부제(副題)처럼 이날 공연은 오페라라기보다는 음악이 흐르는 연극 한 편이며, 모차르트가 아니라 브룩의 작품처럼 보였다. 오페라 연출에서 중요한 건 물량 공세나 마구잡이식 덧칠이 아니라 자유로운 상상력이라는 점을 브룩은 새삼 상기시켰다.

지난 2010년 프랑스 파리의 소극장 '뷔페 뒤 노르'에서 초연했던 프로덕션을 바탕으로 한 이날 무대에서 프랑스의 출연진이 노래는 독어로, 대사는 불어로 소화하고 동시에 한국 관객을 위해 즉흥 대사는 영어로 하는 모습도 신선했다. 청년 시절 사회적 참여와 오페라 개혁을 주창했던 연출가가 작품 말미에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불어넣는 대목도 이채로웠다. 흡사 '나이 든다'는 건 '너그러워진다'와 동의어라는 걸 노(老)연출가가 일깨워주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