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하고 허탈한… 국립극단 시즌 개막작 '풍선'

  • 신정선 기자

입력 : 2012.03.11 23:12

국립극단(예술감독 손진책)이 지난 1일 시즌 개막작으로 올린 '풍선'(연출 이상우)은 아이디어와 설정만으로 밀어붙인 오발탄이다.

중대장에게 국부를 걷어차인 우 일병(남긍호 역)의 고환이 부풀어오르고, 그 안에 만병통치약이 될 특수한 성분이 들어 있다는 기발한 설정은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러나 아이디어의 뼈대에 살로 붙일 이야기가 앙상하기 그지없다. 80분 내내, 인물은 설정된 주제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겉으로만 맴돌다 허망하게 끝난다. 배우는 땀을 뻘뻘 흘리고, 관객은 언제든 감응할 준비가 돼 있는데, 둘 사이를 이을 소통의 지점은 어디에도 없다. 웃기지도 울리지도 못한다.

국립극단의 올 시즌 개막작‘풍선’. /국립극단 제공

국가와 개인, 개인 대 집단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는 밀도 있게 형상화되지 못하고, 넘쳐나는 것은 배우들의 몸 개그와 백화점식으로 나열되는 온갖 코스프레다. 배트맨과 수퍼맨에 007까지 나온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극의 주제와 맞물려 돌아가지 못한다. 극의 짜임새와 주제에 공감해 웃음이 터지는 것이 아니라, 부풀어오른 고환을 들고 뛰어다니는 배우의 모습에 실소가 나올 뿐이다. 특히, 배우 7명이 반라에 망사옷을 입고 나와 팝 가수 비욘세의 노래에 맞춰 5분 넘게 몸을 비비 꼬는 장면은 불필요한 데다 길고 지루하다.

배우들이 시시때때로 관객에게 던지는 애드립은 분위기를 돋우기는커녕 오히려 늘어지게 한다. '신체 언어의 마술사'라는 남긍호의 첫 정통 연극 출연도 빛이 바래버렸다. 우 일병의 마지막 마임이 유달리 허탈하게 느껴진 것은 연극의 원래 의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