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3.07 23:24
단순히 음정만 맞춘다고요? 진정한 소리찾아 고독한 여정
2010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상영작이며 최근 영상(DVD)으로 국내 소개된 '피아노매니아(Pianomania)'는 조율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다큐멘터리입니다. 독일 출신의 슈테판 크뉘퍼(45)는 피아노 제작의 명가(名家)인 스타인웨이 지사의 수석 조율사로, 알프레드 브렌델·랑랑·피에르 로랑 에마르 같은 정상급 피아니스트들과 작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의 초반부터 크뉘퍼의 삶은 평화로움이나 평탄함과는 거리가 멀기만 하지요.
바흐의 '푸가의 기법'을 녹음하기로 예정된 에마르는 1년 전부터 자신이 원하는 피아노를 찾기 위해 조율사인 크뉘퍼를 달달 볶아댑니다. 이를테면 깊은 표현력과 내면적 울림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피아노의 전신(前身)에 해당하는 하프시코드와 오르간의 음색까지 냈으면 하는 것이 에마르의 바람입니다.
막상 연주자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이상적 소리에 근접한 악기를 찾아냈지만, 이 피아노가 호주로 팔려가는 바람에 녹음에 사용하지 못하는 비상사태가 일어납니다. 급히 대타로 쓸 만한 피아노를 수배하지만 이번에는 피아노 부품에서 미세한 결함이 발견되는 바람에 발만 동동 구릅니다. 모두가 잠든 한밤에 텅 빈 연주회장에서 피아노를 온통 뜯어내고 홀로 부품을 교체하는 조율사의 모습에는 그야말로 쓸쓸함이 가득합니다.
조율사는 흔히 피아노의 음정만 맞추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연주회장의 기온과 습도부터 천장의 높이와 악기의 사용 빈도까지 피아노의 소리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사실상 무한합니다. 그렇기에 조율사는 행여 미세한 음향에 변화라도 생길까 두려워 피아노의 음향 판에 더덕더덕 붙어 있는 먼지조차 맘대로 떼어내지 못하고, 연주 도중에 피아노의 현이 끊어지는 악몽에 시달립니다.
피아니스트든, 조율사든 이들의 작업은 결국 '올바른 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연주자가 선택한 소리를 판단하는 심판관이 청중이라면, 조율사의 심판관은 피아니스트라는 점이 차이입니다. 이상적인 소리를 찾기 위해 쉼 없이 조율사를 닦달하는 피아니스트와 그 소리를 구현하기 위해 밤새 악기에 매달리는 조율사 가운데 과연 누가 더 소리에 미쳐 있는(maniac)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