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한량무, 사나이의 묵념이다

  • 신정선 기자

입력 : 2012.03.04 22:54

[조흥동 경기무용단 예술감독]
9·10일 춤인생 60년 기념공연… 초립동 등 아홉가지 춤 무대에
깨끗, 군더더기 없는 동작위해 흰 부채·흰 두루마기만 고집

맞은편에 앉은 신사는 빨간 넥타이에 짙은 감색 정장 차림이다. 희고 말끔한 셔츠에 커프스 버튼까지 갖춰, 언뜻 보면 대기업 중역 같다. 낮고 조근조근한 말투, 한 치도 흐트러짐 없는 신사, 한국 무용계의 거두(巨頭) 조흥동(71) 경기도립 무용단 예술감독은 '선비 같다'는 평가 그대로였다. 그가 9일부터 이틀간 춤 인생 60주년 기념공연을 올린다. 자신의 이름을 건 개인 발표회로는 8년 만이다. 60년을 춤에 바친 인생인데, 최근 광화문에서 만난 조 감독은 "용기를 내서 올린다"고 말했다.

그는 대표적인 남성 춤인 한량무의 대가다. 술 먹고 추는 노인춤 정도로 여겨졌던 한량무는 그를 만나 다시 태어났다. 깨끗하고 군더더기 없는 그의 한량무는 '인생을 아는 사나이의 묵념'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이번 공연에는 음악을 맡은 사람이 13명이나 된다. 대개 무용 공연에는 4~5명 정도가 오르니, 세 배가 넘는 인원이다. 가야금·아쟁·해금·장고 등 한국 전통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는 모두 불렀다. "오랜만에 하는 거니까 제대로 해야죠." 무대에는 그가 직접 추는 한량무·초립동 등 아홉 가지 춤이 오른다.

9~10일 대학로에서 8년 만의 개인 발표회이자 춤 인생 60주년 기념 공연을 올리는 조흥동은 한량무를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린 한국 무용의 대가다. /경기도립무용단 제공

그의 춤은 부채 하나 펴는 것부터가 다르다. 흔히들 부채를 펼 때면 바깥쪽에서부터 안쪽으로 편다. 그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폈다. 익숙하게 여겨지는 동작의 선이 반대로 그려지면서 전에 없던 힘과 기운을 느끼게 한다.

남자 부채는 대부분 매화나 목단을 많이 그려넣는데, 그는 꼭 흰 부채를 쓴다. "그림을 넣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는데, 그러면 신경이 부채로 가요. 꽃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쏠려요. 아무것도 없는 무아지경에서 춤을 춰야 하는데." 두루마기도 흰색만 입는다. "단조롭죠. 하지만 액세서리는 싫습니다. 승부는 춤사위에서 나옵니다."

조용하고 은근하면서 깊이 뿌리박는 그의 힘은 바람 잘 날 없다는 한국무용협회의 이사장을 14년이나 한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국립무용단 단장을 지냈고, 경기도립 무용단 단장도 12년째다. 자신을 "내성적이고 소심하다"고 강조하지만, 일면에는 "반드시 끝장을 보는" 집념이 있다.

경기도 이천 부잣집에서 누나 넷에 막내 독자(獨子)로 태어나, 판검사 되라던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노랑 저고리 분홍 치마 머리에 쓰고 서투른 발디딤새를 흉내 내던 8살 꼬마였다. 중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유학 왔다가 몰래 무용연구소에 다니기 시작했다. 서라벌예대 1학년 때, 미아리 고개를 걸어 넘어서 통학했다. 어느 날 뒤에서 여학생이 수군덕거리는 말소리가 들렸다 "쟤 누구야? 춤꾼? 남자가 무슨 춤이냐?" 절로 고개가 수그러졌다. "손가락질 받아도 안 출 수가 없는 거죠. 팔자라서 그래요."

그가 춤을 배우기 시작할 때만 해도 남자는 여자보다 백배는 더 노력해야 했다. "무용계에서는 절 행운아라고 하는데, 저도 비관하고 후회한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70년대 서울 서대문로터리에서 무용학원을 했는데. 집세며 수도세도 걱정되는 판국에 형사가 '수금'하러 오면 그만두고만 싶었죠." 그래도 60년을 춤만 추고 살아온 것이 "부모님 덕, 스승님 덕"이라고 겸손해했다. "진짜 춤을 추려면 사심이 없어야 됩니다. 구질구질한 게 제일 나쁩니다. 이번 공연도 깨끗하고 힘있게 해보려고 합니다."

▲'조흥동 춤의 세계' 9~10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02)2263-46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