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에 재즈·월드뮤직… 놀라운 '식탐 피아니스트'

  • 김성현 기자

입력 : 2012.03.04 22:52

앙드레 아믈렝 12일 독주회
남들 안하는 작품, 녹음 즐겨… "음악은 다양, 삶은 짧기만"

천진난만하게 웃는 것 같지만, 이 남자의 미소에 방심하면 안 된다.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 마르크 앙드레 아믈렝(51)은 남들이 신줏단지처럼 떠받드는 고전 레퍼토리에는 그저 눈길 한번 주고 말지만, 무심결에 넘기는 작품은 기어코 찾아내서 녹음하고 마는 연주자다. 19세기 프랑스 작곡가 알캉이나 20세기 미국 작곡가 찰스 아이브스 등 그의 관심사는 비단 클래식에만 머물지 않는다. 재즈나 월드뮤직부터 '칠레의 인민연합 찬가(讚歌)에 의한 변주곡'까지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레퍼토리는 흡사 '외계에서 날아온 피아니스트' 같다.

12일 성남아트센터에서 독주회를 앞둔 그에게 일탈에 가까운 듯 왕성한 음악 식탐(食貪)에 대해 이메일로 질문하자, 아믈렝은 "조기 교육의 결과"라고 답했다.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인 아버지는 악보 수집가였어요. 뉴욕 출장을 다녀오시면 악보와 음반이 산더미처럼 늘어났고, 그중에는 알캉과 아이브스처럼 당시에는 덜 알려진 작곡가의 작품도 많았죠."

12일 내한 독주회를 갖는 피아니스트 마르크 앙드레 아믈렝. 현대 음악과 재즈, 월드뮤직 등 왕성한 레퍼토리‘식탐’을 갖고 있는 연주자다. /성남아트센터 제공

그는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면서 이 악보들을 넘겨보았고, 아버지가 수집한 쇼팽과 리스트의 악보를 똑같이 그리고 싶은 마음에 종이에 낙서하면서 작곡에 처음으로 눈을 떴다. 아믈렝은 "기보법(記譜法)도 제대로 몰랐고, 쓰고 싶은 아이디어도 명확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불 같은 열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아믈렝은 꼬박 25년간 '12개의 연습곡'을 작곡하는 데 매달려서 2010년 음반으로 발표했다.

아믈렝은 영국의 명문 음반사 하이페리온을 통해서 80여 종의 음반을 녹음하고, 음악 전문지 그라모폰과 BBC 뮤직매거진, 디아파종의 상찬(賞讚)을 받아온 명인이다. 하지만 그가 피아노 앞에 앉는 시간은 하루 길어야 세 시간 정도. "오히려 중요한 일들은 피아노에서 떨어져 있을 때 일어나지요. 산책을 하고, 작품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우리는 '작업'을 하는 겁니다. 작품의 세밀한 구성과 대위법, 형식이나 박자에 대해 곱씹으면서 일종의 '계시'를 받지요."

그는 "젊은 연주자들이 '2주 만에 이 작품을 마쳐야지'라고 말하는 걸 들을 때마다 웃고 만다. 음표는 단지 출발점일 뿐이며, 작품과 긴밀한 관계는 그렇게 단시간에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작곡과 연주를 겸한다는 점에서 그는 쇼팽과 리스트의 전통을 잇는 음악인이기도 하다. 아믈렝은 "음악은 너무나 다양하고 무한하지만, 우리의 삶은 짧기만 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반드시 사랑하는 작품들을 연주해야 한다. 그것이 내 신념"이라고 말했다. 12일 독주회에서는 알반 베르크의 피아노 소나타와 리스트의 소나타 b단조, 드뷔시의 전주곡 2집과 자작곡인 '12개의 연습곡' 가운데 일부를 들려준다.

▲마르크 앙드레 아믈렝 피아노 독주회=12일 오후 8시 성남아트센터, (031)783-8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