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콥스키 콩쿠르, 한국 고교생 위해 규정 바꿨다

  • 김성현 기자

입력 : 2012.02.29 03:04

러시아의 '차르' 게르기예프 "한국 음악계는 크레셴도"
피아노 천재들에 반했다… 게르기예프 인터뷰서 밝혀
17세 조성진 연주듣고 반해 만 18세이상만 참가 가능을 16세로 내려
조君 3위 성적… "한국은 기악분야서 빼어나"

한국 10대 피아니스트의 재능에 매료된 러시아의 명(名)지휘자가 지난해 이 피아니스트를 콩쿠르에 참가시키기 위해 '세계 3대 콩쿠르'로 불리는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대회 참가 규정까지 바꾼 것으로 확인됐다.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58)는 27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이 끝난 뒤,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가진 자리에서 "지난해 일본 도쿄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1994년생)의 연주를 듣고 깜짝 놀라서 콩쿠르 참가를 권유했지만, '나이가 너무 어려서 출전할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콩쿠르 주최 측에 즉시 전화를 걸어서 연령 규정을 바꾸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게르기예프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러시아 마린스키 오페라 극장을 이끌고 있으며,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대회 위원장을 맡고 있어 '러시아의 음악 황제(차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조성진은 2008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 청소년 쇼팽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고, 이듬해 일본 하마마츠 피아노 콩쿠르에서도 우승한, 대표적인 영재 연주자다. 하지만 지난해 그는 만 17세로, 만 18세 이상만 참가 가능한 이 콩쿠르에는 출전할 수 없었다. 이미 대회 공고까지 나간 상태였기 때문에 규정 변경은 더욱 힘들었다.

이 눈빛에 매료된 러시아의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대회 규정까지 바꿔가면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콩쿠르 참가를 권유했다. 사진은 지난해 모스크바에서 열린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조성진의 연주 장면. /AP
하지만 게르기예프는 콩쿠르 주최 측에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그리고리 소콜로프가 1966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할 당시 나이도 16세에 불과했다. 중요한 건 음악이지 나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러시아 음악 황제'의 전화 덕분에 대회 참가 규정은 지난해부터 '만 18세 이상'에서 '만 16세 이상'으로 조정됐다. 지난해 6월 조성진은 이 콩쿠르 피아노 부문 3위에 올랐다.

조성진의 스승인 피아니스트 신수정(서울대 음대 전 학장)씨는 "대회 참가 연령이 내려가서 무척 기뻐했는데, 그 정확한 이유는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게르기예프는 "독일과 러시아에도 빼어난 연주자가 많지만, 한국의 젊은 음악인들은 특히 훌륭하다. 예전에는 에밀 길렐스(피아노)와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바이올린) 등 러시아에서 거장이 나왔지만, 앞으로는 한국의 연주자들이 정상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27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에서 지휘자 게르기예프가 피아니스트 임주희(12)양을 관객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G장조 1악장을 협연했다. /빈체로 제공
게르기예프는 젊은 연주자들이 쏟아지는 한국의 음악계를 '크레셴도(점점 세게)'라는 음악 용어에 비유하면서, "나는 (한국의 부상을)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피아노와 현악 등 대부분의 기악 분야에서 빼어나며, 성악의 경우 목소리는 환상적이지만 실제 극장 무대에 서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카리스마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만찬을 겸한 이 인터뷰에는 첼리스트 정명화와 피아니스트 백건우 등 게르기예프와 각별한 인연을 지닌 한국 음악인들도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