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무대 4년차 김선욱, 기립박수에도 "전 아직 애송이"

  • 암스테르담=김경은 기자

입력 : 2012.02.08 23:23

[네덜란드서 정명훈 지휘 로열 콘서트헤보와 협연, 청중들 환호]
2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 유명 매니지먼트 소속이지만 아직은 '대기 피아니스트'
솔직히 음반 내고는 싶지만 느리게, 더 공부후 도전할 것

지난 3일 저녁(현지시각)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콘서트헤보 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가 끝나자 객석은 박수와 환호로 차올랐다. 이날 연주는 로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RCO)가 맡았지만 지휘한 이는 정명훈, 피아노는 김선욱(24)이 쳤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네덜란드 청중은 앞다퉈 자리에서 일어나 '벨벳의 현(絃)' '황금의 관(管)' RCO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 정명훈과 김선욱에게 찬사를 보냈다. 네덜란드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연 김선욱은 감격한 듯 손을 모아 청중에게 인사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위치는 독특하다. 예원중·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순수 국내파 연주자. 지난 2006년 영국 리즈 국제 콩쿠르에서 43년 역사상 아시아인 최초로 우승을 거머쥔 후 세계 3대 매니지먼트사 중 하나인 아스코나스 홀트와 계약, 런던을 거점으로 4년째 세계무대를 누비고 있다. 후배 피아니스트들에게 그는 부러움의 대상이자 닮고 싶은 선배다.

서울 연주회에 앞서 암스테르담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한 김선욱은“내가 오른쪽으로 가면 로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는 본능적으로 왼쪽으로 가서 전체 음악의 틀을 풍성하고 촘촘하게 만들더라”고 했다. /현대카드 제공

그러나 냉정하게 따지면 그는 아직 '대기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 예프게니 키신, 머레이 페라이어 등 같은 회사 소속 피아니스트들이 연주회를 펑크 내거나 무대에 설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그에게 연락이 간다. 자존심 상하는 일 아니냐고? "아니요. 아직은 20대 중반… 피아노 세계에서 저는 애송이예요. 한 계단 밟고 나면 다음 계단이 또 있고, 그만큼 개척할 길이 수두룩한 행운아이지요." 김선욱은 특유의 웅얼거리는 말투로 밝게 답했다. 사실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연주를 들려주지 못하면 다음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는 대기 피아니스트의 세계에서 김선욱은 매번 뛰어난 연주를 해내며 자신만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정명훈이 지휘하는 RCO와의 아시아 투어는 바로 그 땀의 결과다. "그날 연주회 때도 기립박수 쳐주는 청중을 보고 악장한테 그랬어요. '우와 다 일어나줬어요. 놀라워요!'라고."

김선욱은 "물론 쉬운 건 아니다"고 했다. "가끔 무대 위에서 망치고 내려오는 꿈을 꿔요. 아무 준비도 안 되어 있는 상태로 청중 앞에 서는 거지요. 다행히 워낙 낙천적이라 별로 개의치 않아요. 방법은 하나, 늘 긴장상태로 살면 돼요. 연습하고, 연주하고, 공부하고. 그게 제 삶이죠."

4년간 그는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트럭 콘서트'. 3년 전 브뤼셀의 클라라 페스티벌에서 그는 트럭에 피아노를 싣고 다니며 일반인들에게 20분짜리 짧은 곡을 들려줬다. 브라스 밴드와 만난 곳에서는 함께 팡파르를 울렸고, 때론 트럭 안에 의자를 놓고 즉석에서 청중을 초청하기도 했다. "유럽에는 어느 시골을 가도 20년 넘게 해온 페스티벌이 있어요. 할머니·할아버지가 대부분인데도 클래식을 있는 그대로 즐기며 자기네 축제에 자부심을 갖고 있죠. 학교에서 미처 배우지 못한 살아있는 클래식을 거기서 빨아들여요."

클래식 팬들의 아쉬움은 김선욱만의 음반이 없다는 것. 그는 "솔직히 몇년 전만 해도 '어우, 나도 하나 내야 하는데' 조바심을 냈지만 지금은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할 때"라며 "정말 마음에 드는 오케스트라가 있으면, 그리고 이 곡은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녹음에 도전할 생각"이라고 했다.

김선욱은 "느리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나갔다"면서 "로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와의 연주도 실현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꿈만 같다. 한국에서 진짜 나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22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