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로 달리다, 마술처럼 역에 들어와 멈춘다

  • 신정선 기자

입력 : 2012.01.25 23:41

[그 무대의 비밀] 뮤지컬 '영웅'의 기차
1억5000만원 들여 1년 제작

"(전설적인 브로드웨이 프로듀서인) 데이비드 벨라스코도 매우 좋아했을 것이다." 뮤지컬 '영웅'의 기차 장면은 지난해 8월 미국 뉴욕 공연 당시 뉴욕타임스도 격찬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국내 창작뮤지컬을 한층 진화시킨 '영웅'의 기차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높이 3.5m, 길이 약 8m의 실물 기차는 2막에서 눈보라를 뚫고 만주 벌판을 달릴 때, 이토 히로부미를 싣고 하얼빈역으로 들어올 때 등장한다. 연출을 맡은 제작사 에이콤인터내셔날의 윤호진 대표는 "기차 제작에만도 1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무대 제작에 들어간 비용이 약 3억원, 기차에 들어간 게 그 중 절반이다. 진짜 기차처럼 보이지만 전체 몸판은 합판으로 만들었다. 부속품만 실제 철물을 썼다. 그래서 앞뒤로는 못 나가고 리프트 기계를 이용해 위아래로만 움직인다.

뮤지컬‘영웅’2막에서 하얼빈역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를 안중근(오른쪽)이 저격하고 있다. /에이콤인터내셔날 제공
기차가 하얼빈역으로 들어와 멈추는 장면이 가장 큰 난제였다. 이토가 하얼빈역 기차에서 내린 뒤,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하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이토가 내리는 기차를 과연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두고 숙고를 거듭했다. 쉽게 하려면 기차가 정거한 장면부터 보여주면 됐다. 그러나 평이한 연출로는 극의 밀도를 높이기 어렵겠다는 것이 제작진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기차가 달려 들어와서 멈추도록 구현하기로 했다.

윤 대표와 무대 디자인을 맡은 중앙대 박동우 교수는 "데이비드 카퍼필드 마술쇼를 능가해보자"고 합심했다. 이때부터는 관객의 시각과 대결이 된다. 영상으로 내달리는(척하는) 기차의 영상을 쏘는 동안, 실물 기차는 무대 뒤쪽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다. 스크린이 기차를 내내 가려준다. 기차가 멈추는 듯한 순간에 스크린을 순식간에 걷으면 뒤에 있던 기차가 보이면서, 마치 달려들어와 정지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마술'을 위한 예행연습 역시 대작업이었다. 달리는 영상을 제작하는 데에 석 달이 걸렸다. 실물 영상이 아니라 컴퓨터그래픽(CG) 영상이라 더 어려웠다.

영상에서 실물 기차로 전환할 때는 마법처럼 순식간에 바꿔야 하기 때문에 한 치라도 오차가 있으면 바꿔치기가 들통나면서 관객의 몰입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었다. 실수 없는 공연을 위해 경기도 이촌 연습장을 3주간 빌려서 설치해놓고 실험을 거듭했다. 실제 무대에서는 프로젝터 두 대가 동원됐다. 초연 개막을 앞둔 시연회 때 영상이 작동하지 않은 적도 있었으나, 다행히 개막 이후로는 무사고. 지금까지는 초연 때 기차가 계속 달리고 있다. 윤 대표는 "장기 공연을 위해 기차 한 대를 더 제작할 예정"이라며 "다음 목표는 더 가벼운 기차"라고 말했다.

▲뮤지컬 '영웅' 2월 5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02)580-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