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빅3 관장' 여성 파워 시대 활짝

  • 곽아람 기자
  • 허윤희 기자

입력 : 2012.01.20 03:11 | 수정 : 2012.01.20 16:39

김영나·김홍희 관장에 이어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정형민씨
"한국 미술 세계에 알릴 것"

"글쎄요. 새로 자리를 맡으면 혁신, 쇄신 같은 얘기를 많이 하지만 무조건 모든 걸 없애버리는 것은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것 아닙니까. 앞선 관장들께서 추진했던 일을 정착시키고 개선하는 데 주력해야죠."

들뜸도 흥분도 없었다. 19일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임명된 정형민(60) 서울대 동양화과 교수 겸 서울대미술관장은 차분하고 신중했다. "내일 첫 출근이라 아직 뭐라 말하는 게 섣부른 일 같다"며 정식 인터뷰를 사양한 그는 냉정한 미술사가 쪽에 아직은 더 가까웠다.

그러나 소신은 분명했다. "뉴욕 MoMA, 파리 퐁피두, 런던 테이트 모던 등 인상적인 미술관이 많다. 건축 구조물로, 프로그램으로, 소장품으로 심지어 부대 시설로 깊은 인상을 주는 미술관은 세계 곳곳에 있었다"며 "외국 것을 소개하는 것보다는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데 역점을 두겠다"고 했다. 정 관장은 이화여고와 미국 웰슬리대를 나와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미술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예술의전당 전시감독(1999~2001년)도 역임했다.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장(사진 위)과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사진 아래 왼쪽),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사진 아래 오른쪽). /정정현·전기병·김영근 기자.

국립현대미술관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을 필두로 덕수궁 분관에 이어 옛 기무사 터에 2013년 '울(UUL)국립서울미술관'을 연다. 정 관장은 "서울 외곽과 서울 중심부, 그리고 각기 규모가 다른 미술관을 셋 갖게 됐으니 세분화, 특성화 전략을 펼 것"이라고 말했다.

1969년 개관 이후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여성이 맡게 됨으로써 우리 미술계는 '여성 파워 시대'가 활짝 열리게 됐다. 정 관장은 "21세기에 아직도 그런 게 화제가 되느냐"고 반문했지만 국립중앙박물관 김영나 관장, 서울시립미술관 김홍희 관장까지 '빅3' 국·공립 미술·박물관 수장을 모두 여성이 맡게 된 것. 국내 미술관·박물관 역사상 처음 있는 일. 세 사람 모두 미술 이론 전공이란 점도 공통점. 이들이 이끌 미술관·박물관 모습도 관심거리다.

지난해 2월 임명된 김영나 관장은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전시 질을 향상시키는 등 박물관 내실화를 다지고 있다는 평이 우세하다. 전임 최광식 관장(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저돌적인 추진력으로 박물관 관람객 숫자, 블록버스터 전시 등 '양적 성장'을 이끌었다면, 김 관장은 "관람객 숫자는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는 전시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로 전혀 다른 '박물관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 12일 임명된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과 19일 임명된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장에 대한 기대도 크다. 김 관장은 경기도미술관장, 정 관장은 서울대미술관장을 역임하면서 탄탄한 기획력으로 학자·평론가 출신이면서도 현장 실무 능력을 겸했다는 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