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中華 세계 점령] 피아노 전공 3000만명… 머릿수가 다르다

  • 김경은 기자

입력 : 2012.01.19 03:07

[중국 클래식, 과감한 투자]
인해전술 - 매년 20만명이 음악원 시험
국제콩쿠르 참가 갈수록 늘어… 入賞 확률 높아지고 우승까지
물량공세 - 20년내 공연장 200개 더 짓고 국제 대회 상금액, 급이 달라
정부가 나서 '해외악단 모시기'… 후원 기업엔 세제 혜택도

"200년 전 클래식의 중심은 유럽이었다. 100년 전엔 미국, 50년 전엔 일본이었다. 그리고 이젠 중국이다."(랑랑)

가장 '미국적'이라는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2009년 참가자 29명 중 6명, 2005년 35명 중 8명이 중국인이었다. 2001년엔 3명, 1991년엔 1명이었다. 참가자 수가 늘어난 만큼 입상 확률도 높아져 2009년에는 중국의 장하오첸이 공동 1위를 차지했고, 2005년 결선에 오른 중국인 6명 중 1명이었던 후앙 추―팡은 그해 클리블랜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중국 클래식 열풍을 주도하는 대표 피아니스트 랑랑(사진 위). 아래는 피아니스트 윤디 리(오른쪽)와 첼리스트 지안 왕. /소니뮤직·유니버설뮤직코리아 제공
세계 음악계에서 중국의 '인해전술'과 '물량 공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예비군'은 엄청나다. 2012년 현재 중국에서 피아노 전문 유치원생 부터 대학생은 3000만명, 바이올린은 1000만명이다. 선양음대에만 8000명이 재학 중이다. 중국음악가협회에 따르면 해마다 20만명이 중국 내 음악원 입학시험에 응시한다. 30년 전보다 40배 이상 불어난 수치다. 2006년 중국 142개 공장이 피아노 37만대, 바이올린 100만대, 기타 600만대를 생산해냈다.

정부가 나서 공연장 건설·음악가 띄우기

중국 정부는 음악 인프라 구축에 적극적이다. 대형 콘서트홀 건설붐이 대표적 예. 6000억원을 들여 2007년 9월 완공한 국가대극원, 중국 공산당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열리는 인민대회당, 중산공원 내 중산음악당, 바오리극장 등 베이징에만 1500석 이상 대형 콘서트홀이 4개이고, 2010년 상하이 오리엔탈아트센터 등 전국에 15개의 새 대형 콘서트홀이 들어섰다. 첼리스트 지안 왕(44)은 "20년 안에 중국 전역에 공연장 200개가 더 생길 것"이라 예상했다.

중국 정부는 자국 연주자 마케팅에도 열성적이다. 작년 1월 백악관에서 열린 후진타오 주석 환영 만찬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랑랑이 초대받자, 중국 정부는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랑랑 등 중국 스타의 이미지 광고를 방영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땐 랑랑을 클래식 홍보대사로 임명,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봤다.

중국은 2006년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 등 국제 콩쿠르 3개도 만들었다. "작년 10월 칭다오에서 열린 제3회 중국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의 우승상금은 5만달러(약 5600만원). 차이콥스키 콩쿠르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등 세계 유명 콩쿠르의 우승상금이 1000만~3000만원인 데 비하면 높은 액수다. "서양에 한참 못 미치는 역사와 권위를 돈으로 메워 실력 있는 해외 연주자들의 참가를 높이려 한다"는 게 김민 서울대 명예교수의 설명이다. 최근에는 전 세계에 약 450대 정도인 스트라디바리나 과르니에리 같은 고급 악기를 중국 투자자들이 '수집'하듯 사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적 악단, 일본은 안 가도 중국엔 간다

이제 세계적 연주 단체는 중국부터 찾는다. 로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 1888년 창단돼 베를린필에 필적하는 세계적 오케스트라로 꼽힌다. 이 악단은 2010년 11월 아시아 투어 때 일본과 한국에서만 공연했다. 그러나 오는 2월 아시아 투어에서는 일본을 빼고 중국에 간다. 작년 8월 내한했던 다니엘 바렌보임과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도 베이징과 상하이, 서울에서만 연주했고, 작년 11월 내한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당시 아시아 투어에 중국 공연을 추가했고,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은 오는 3월 중국에서만 공연한다.

6000억원 들여 2007년 완공한 국가대극원.

지난해 대지진 때문에 연주자들이 피하는 이유도 있지만, 중국의 적극적 '구애'가 더 큰 이유다. 박선희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음악사업팀 과장은 "2010년 상하이 엑스포 이후 중국 정부가 적극 나서서 해외 유명 연주자나 연주 단체의 공연을 유치하고 있다"면서 "중국 콘서트장이 급증하면서 과거 일본 순회 연주와 같은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에 세계적 악단이 중국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외국 기업들의 지원도 늘고 있다. 올해 중국 신년음악회에 출연료 3억원을 받고 선 랑랑이 대표적. 독일의 아우디, 스위스의 롤렉스와 몽블랑, 이탈리아 남성복 제냐, 미국 스타인웨이 피아노 등 중국 시장을 겨냥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후원을 받아 공연을 추진한 중국 정부는 후원 기업들에 세제 혜택을 주는 식으로 메세나(Mecenat)를 끌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