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1.18 23:38
떠오르는 샛별 권민석
전교 5등하다 리코더에 빠져… 헤이그 왕립음악원 유학까지
"리코더(recorder)도 악기예요. 오케스트라를 보세요. 큰북, 심벌, 캐스터네츠, 트라이앵글… 단순한 악기가 얼마나 많은데요." 지난 12일 저녁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전화를 받은 권민석(27)은 "리코더는 구멍이 8개니까 256개(2의 8승)의 조합을 다 익혀야 하고 호흡도 곁들여야 해요. 나름 사연 많은 악기입니다"라며 시원하게 웃었다.
권민석은 리코더계의 떠오르는 스타다. 그는 2009년 몬트리올 국제 리코더 콩쿠르 1위(현대음악 해석상), 런던 국제 리코더 콩쿠르 3위를 휩쓸었고, 그 해 금호아트홀 연주회에서 리코더로는 거의 연주되지 않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과 윤이상의 '중국그림'을 연주해 "야심찬 연주자"라는 평을 얻었다.
오는 26일 금호아트홀 연주회 역시 야심찬 프로그램으로 채울 예정. 바이올린을 위한 편성으로 기록되어 있는 폰타나의 소나타 2번, 비발디의 '조화의 영감' 중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바흐의 루트를 위한 모음곡, 히로세 료헤이의 무반주 리코더를 위한 '명상' 등을 연주한다. 하프시코드 연주자인 스즈키 마사토가 함께 한다.
리코더와의 인연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작됐다. 재미삼아 바흐의 '인벤션' 피아노 악보를 리코더로 불었는데 소리가 썩 좋았다. 고1 때 학급 1등·전교 5등 하던 그가 리코더를 전공하기로 결심했다. "미쳤구나"(부모님·선생님), "잘 생각했다! 네가 예·체능으로 가면 우리 등수가 하나씩 오르겠구나"(친구들)는 반응이었다. 서울대 작곡과에 입학, '리코더 전공생만 학·석사 합쳐 20명이 넘는'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음악원 고음악학과로 유학 갔다. 지금은 헤이그 왕립음악원 동기들과 2009년 창단한 고음악 앙상블 '콩코르디 무지치'의 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권민석은 "리코더만 해서는 먹고 사는 게 힘들겠죠. 하지만 저는 음반 녹음도 하고, 연주회도 열고, 모교에서 강의도 하니까…"라며 평범한 직장생활 하는 동창생들이 부럽지는 않다고 했다. 그가 현재 가지고 있는 리코더만 30대. 값으로 치면 대당 100만원에서 300만원 사이다. 리코더는 바로크시대 이후 개량이 전무(全無)해 고전음악과 낭만음악을 주로 하는 오케스트라에서 밀려나 바로크 오케스트라를 대표하는 악기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의미에서 권민석이 좋아하는 지휘자는 아르농쿠르. "총 3시간 연주 중 리코더가 2~3분만 나오는 바흐의 '마태수난곡' 연주 때 99%의 악단들은 플루티스트가 리코더를 겸해서 불게 했지만 아르농쿠르는 리코더 연주자를 따로 불러 연주시켰기 때문"이다.
▲권민석(Recorder)=26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 (02)6303-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