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1.13 23:33
이해랑연극상 한명구, 이지적 돈키호테 선보여… 이순재와 더블 캐스팅
"소중한 것을 사랑하고 그것만을 위해 존재하길 원해
인간에게 꿈이 있는 한 돈키호테는 계속 공연 될 것"
늑막염 요양 중 심심풀이로 읽은 책에 감염된 시골 노인 알론소 키하노는 신념에 찬 부르짖음과 함께 방랑 기사 돈키호테 데 라 만차로 변신한다. 적어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렇다. 단 한 번 본 적도 없는 둘시네아 공주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라고 믿고, 당장에 달려가 모든 것을 바치려 한다.
1605년 스페인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펜 끝에서 태어난 후, 400년이 넘도록 꿈을 향해 돌진해온 돈키호테가 다시 한 번 창을 들었다. 지난 7일부터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재공연에 들어간 '돈키호테'의 주연배우 한명구(52)를 10일 명동에서 만났다. 이순재와 더블 캐스팅된 그는 "돈키호테가 얼마나 절실하게 둘시네아를 욕망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애썼다"고 말했다. "소중한 존재를 영원히 사랑하고, 그것만을 위해서 존재하고 싶은 게 모든 사람의 꿈 아닐까요? 보이지 않는 소중함을 찾으러 나선 돈키호테는 꿈을 잃은 시대에 등장한 희망의 수퍼맨입니다."
국내 최고 권위의 이해랑연극상(2011년)을 받은 그는 박사 학위까지 있는 학구파 배우다. "인물의 마음이 투명하게 비치는 것이 좋은 연기"라는 그의 연기관은 '돈키호테'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순재는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객석 여기저기서 킥킥거리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돈키호테라서 웃기는 게 아니라 이순재라서 웃긴다. 한명구가 보여주는 이지적이고 철학적인 돈키호테는 희극적 광기를 내뿜을 때도 어딘지 처연한 슬픔이 내비친다. 한명구의 돈키호테가 "삶의 전투에서 도망친 비겁한 탈주병아, 저주받을지어다!"라고 호령할 때는 비장한 결기가 넘쳐난다. 애국가 후렴이라도 반복하듯 "둘시네아 공주! 내 존재의 의미!"라고 되뇌던 그가 클로드 드뷔시의 '달빛'을 들으며 그녀를 상상하는 장면은 돌아오지 못할 옛 추억을 건드리듯 아련하다.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죠. 초등학생이 되길 기다리고, 애인을 기다리고, 자식을 기다리니까요. 돈키호테는 꿈이 이뤄지길 기다리는 상징적 인물이 아닐까 합니다. 인간에게 꿈이 존재하는 한 돈키호테는 끊임없이 공연될 겁니다."
2006년 한국 최초로 '꿈의 무대'라는 런던 바비칸센터에 작품을 올린 양정웅이 연출을 맡았다. 왁자지껄한 소동 한가운데에 웃음을 부려놓을 줄 아는 양정웅 특유의 재미가 있다.
'돈키호테'를 마친 후, 한명구는 '고도'를 기다리러 간다. 4월 산울림소극장에서 재공연할 '고도를 기다리며'(연출 임영웅)에서 다시 블라디미르를 맡았다. 벌써 18년째 거의 매년 하는 역이다. 5월에는 '고도…'를 들고 루마니아와 몰도바의 연극 축제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20년 가까이 블라디미르를 하지만 여전히 코끼리 다리 만지는 수준이라고 생각해요. '고도'는 기다려도 기다려도 새로운 기다림을 안겨주거든요. 그래도 계속 기다릴 겁니다. 꿈은 누구도 닿지 못하는 곳에 존재하니까 꿈이겠지요."
▲22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1644-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