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으로 돼지와 뒹굴었다, 그게 어때서

  • 곽아람 기자

입력 : 2012.01.11 03:19 | 수정 : 2012.01.11 11:41

도올의 딸 사진작가 김미루 - 내 퍼포먼스가 에로틱하다고? 그렇게 보려는 사회 고정관념

"내 작업은 에로틱하지 않다. 자연스러울 뿐이다."

재미 사진작가 김미루(31)는 지난 12월 1일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바젤 아트페어에서 알몸으로 돼지우리에 들어가 돼지 두 마리와 함께 104시간 동안 생활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퍼포먼스 제목은 '나는 돼지를 좋아하고 돼지는 나를 좋아한다(I Like Pigs and Pigs Like Me)'. 이 도발적 퍼포먼스는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을 비롯한 외신들이 보도하는 등 파장이 일었다. 국내에서는 그가 도올 김용옥(64) 원광대 석좌교수의 딸이라는 사실이 화제가 됐다. 미국 뉴욕에 거주하는 김미루를 9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나는 돼지를 좋아하고 돼지는 나를 좋아한다'는 어떤 퍼포먼스인가?

"독일 현대작가 요셉 보이스의 1974년 퍼포먼스 '나는 아메리카를 좋아하고 아메리카는 나를 좋아한다'에서 제목을 따 왔다. 보이스는 뉴욕 갤러리에서 1주일간 야생 코요테와 생활했다. 보이스의 작업에서 동물은 '아메리카의 혼'을 상징했지만 나는 이번 작업에서 돼지라는 동물 자체에 더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해 3월에도 알몸으로 돼지 수백 마리 사이에 둘러싸인 모습을 찍은 사진으로 뉴욕에서 '돼지, 고로 나는 존재한다(The Pig That Therefore I Am)'전을 열었다. 왜 굳이 '돼지'인가?

"돼지와 인간의 피부 색깔이 비슷하다는 점에 우선 착안했다. 사실 돼지는 지능도 높고, 유전학적으로도 인간과 가까운 동물이다. 한자의 '집 가(家)'자만 봐도 집(宀) 안에서 돼지(豕)를 키운다는 뜻 아닌가. 이처럼 옛날에는 인간과 돼지가 매우 가까웠지만 최근 몇백년 동안 산업화로 인해 멀어졌다. 내 퍼포먼스를 보면서 관객이 인간과 돼지와의 관계변화에 대해 질문을 던지길 바랐다."

―실제로 돼지와 생활해 보니 어땠나?

"돼지와 마찬가지로 귀리, 풀, 곡물 등을 먹으며 생활했다. 알몸으로 있으니 돼지와 인간의 경계가 상당히 모호해진다 싶은 적도 있다. 그러나 나는 항상 우리 안을 치우는데 돼지는 계속 거기에 물을 엎지른다거나 할 때 문득 '나는 인간이고, 돼지는 돼지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 12월 1일 미국 마이애미 바젤 아트페어에서 알몸으로 돼지 두 마리와 104시간동안 생활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는 김미루. /로이터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소재를 택한다는 시각도 있다.

"논란을 일으키려는 것이 아니다. '여성 누드=에로틱하다'고 하는 것은 억압적이고 보수적인 사회의 고정관념 아닌가."

도올 김용옥의 1남2녀 중 막내로 1981년 미국에서 태어난 김미루는 서울에서 자라다가 중학교 3학년 때인 1995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2003년 컬럼비아대에서 불문학과 낭만주의 문헌학 학사과정을, 2006년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회화과 석사과정을 마쳤다.

―도올 김용옥의 딸이라는 이유로 국내에서 화제가 됐다. 당신 예술세계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인가?

"대학교 때는 아버지의 권유로 의학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의학 공부는 잘 안 맞는 것 같아서 '반항'하고 미술을 시작했다. 누드 프로젝트를 하니까 아버지는 '그림 그리면 안 되겠느냐' '이제 그만 해도 되는 거 아니냐'며 마뜩잖아 했다. 그런데 2009년 초 내가 내 작업을 철학적인 개념으로 설명한 스피치가 글로벌 특강 사이트 'TED 콘퍼런스(www.ted.com)' 등에서 화제가 되니까 생각이 바뀌어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기 시작하셨다. 지난해 초 뉴욕타임스에서 '돼지, 나는 고로 존재한다'를 조명했을 때도 굉장히 좋아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