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환상교황곡… 예르비의 시대가 왔다

  • 김경은 기자

입력 : 2011.12.07 23:17

[공연리뷰] 백건우 & 파리 오케스트라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작곡에 뛰어든 베를리오즈는 1827년 한 여인에게 반했다. 상대는 파리에서 줄리엣과 오필리어를 연기한 아일랜드 출신 여배우 헤리엣 스미드슨. 청년은 수없이 편지를 보냈고, 여인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프랑스어를 몰라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었던 것. 어쨌든 청년은 실연을 달래기 위해 곡을 썼다. 재능 있는 작곡가가 대답 없는 사랑에 지쳐 음독자살을 기도하지만 죽지는 않고 무서운 환상 세계에 빠진다는 내용, 바로 '환상교향곡'이다.

지난 2일 이 곡을 연주한 파리 오케스트라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환상으로 휘감았다. 3악장에서 잉글리시호른 주자와 오보에 주자는 오케스트라와 별도로 무대 한편에 자리 잡고 서서 두 목동의 피리 소리를 형상화한 목가적 선율을 주고받았다. 지휘자 파보 예르비(49)는 '환상교향곡'뿐 아니라 베버의 '마탄의 사수' 서곡, 메시앙의 '잊혀진 제물',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까지 여러 관현악곡을 연주하며 '예르비의 시대'가 왔음을 스스로 증명 해보였다.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슈만과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해 박수를 받았다.

지난 2일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슈만 '피아노 협주곡' 연주를 끝낸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지휘자 파보 예르비, 파리 오케스트라가 청중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절묘한 타이밍 짚어준 지휘봉

◇“예르비는 수채화처럼 맑은 색채감을 지닌 파리 오케스트라에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같은 양감을 불어넣었다. ‘환상교향곡’과 ‘페트루슈카’는 악보가 복잡한데 지휘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라서 각 악기군이 절묘한 타이밍에 등장할 수 있게 순서를 미리 짚어줬고, 휴지부·종지부에서 일사불란하게 멈췄다.”(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

청중 감동케 한 서비스 정신

◇“‘잊혀진 제물’ 연주 도중 한 관객이 크게 기침했다. 기분 나빠하면서 노려봤으면 분위기가 위축됐을 거다. 예르비는 뒤돌아보며 살짝 웃더라. 젊은데 지휘도 잘하고 청중에게 친밀감까지 줬다. 단원 전원이 기립해 무대 뒤 합창석에 절하는 모습에서도 겸손과 서비스 정신이 묻어나 보기 좋았다.”(이종구·이종구심장크리닉 원장)

지휘·연주·객석 하나된 공연

◇“‘페트루슈카’에서 들려준 관능적인 플루트 솔로가 잊혀지지 않는다. 사실 ‘마탄의 사수’ 서곡 시작에서 음정이 안 맞는 부분이 있었지만 지휘자·연주자·청중이 하나가 된 드물게 즐겁고 유쾌한 음악회였다.”(최은규·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