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보스트리지 & 에우로파 갈란테 숨겨진 보물에 빛을 밝히다

  • 아트조선

입력 : 2011.12.08 15:47

지난 11월 6일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린 이안 보스트리지와 에우로파 갈란테의 연주는 다이내믹한 바로크 앙상블의 매력과 보스트리지가 선보이는 색다른 18세기 레퍼토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었다. 파비오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의 유려한 연주, 보스트리지의 섬세한 바로크 장식음은 객석으로 감동을 전하기에 충분했다.

스리 테너 신드롬이 지난 세기말을 장식했다면, 이제 고음악 부활의 정점에 이른 21세기에는 바로크 스리 테너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게 되었다. 슈베르트 가곡으로 데뷔한 영국의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의 새로운 연구 결과인 바로크 시대의 스리 테너, 그들의 레퍼토리를 21세기 테너 한 명이 노래한다는 기발하고 흥미로운 기획이 이번 공연의 키포인트다.  

이안 보스트리지는 현재 영국의 공연계를 이끌어가는 스리 테너 중 한 명이다. 이들은 앤소니 롤프 존슨Anthony Rolfe Johnson의 후계자들로 오페라, 고음악, 예술가곡 분야를 통틀어 활약 중이다. 다른 두 명은 몇 년 전에 계몽주의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요한수난곡>을 공연했던 마크 패드모어Mark Padmore 그리고 아직 내한한 적은 없지만 민코프스키와 인상적인 메시아를 녹음한 존 마크 앤슬리John Mark Ainsley이다. 대륙의 테너들과는 다른 부드럽고 탄탄한 저음을 기본으로 하는 이 테너들은 독특한 개성으로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 중 보스트리지는 근래 거의 매해 내한 연주를 가질 정도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연주를 앞두고 기획하는 측엔 다소 부담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날 들려준 바로크 시대의 아리아들 특히 테너의 작품들은 오늘날 즐겨 듣는 낭만파의 오페라와는 전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대부분 국내 초연작이라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분야에 몸담고 있는 필자는 그런 염려를 떨쳐준 보스트리지에게 깊은 감사와 공감을 전하고 싶다.

사실 화려하고 높은 고음으로 대표되는 낭만 오페라 아리아 그리고 섬세한 감정 표현과 정교함을 보여주는 바로크 아리아는 너무나 어법이 다르다. 보스트리지가 고음악 연주자로 음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가사에 충실한 표현에 몰입했던 그에게 바로크는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싶다.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작품들을 표현이라는 마법을 통해 관중을 설득하는 능력은 바로 바로크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정공법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또한 성공적인 이번 연주의 동반자로 파비오 비온디가 이끄는 에우로파 갈란테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과감하고 정곡을 찌르는 활놀림은 비록 14명의 적은 인원이지만 변화무쌍한 다이내믹의 표현으로 보스트리지의 유려한 음성을 받쳐주었다. 보스트리지의 음반 <Three Baroque Tenors>(EMI)에서는 잉글리시 콘서트The English Concet가 앙상블을 맡았지만, 이번 연주에서 에우로파 갈란테가 보여준 연주는 실연에서 보여주는 현장감과 긴장감을 충실히 전달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연주회의 시작은 에우로파 갈란테가 들려주는 텔레만의 4성 서곡 F장조였다. 첫 곡이 20분 정도 걸렸으니, 이안을 보고 싶은 청중들은 좀 섭섭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위대한 가수를 기다리는 마음은 마치 식사 전의 허기와도 비교되지 않을까. 독일 작곡가이지만 프랑스풍의 서곡인 텔레만의 음악은 다양한 춤곡의 성격을 잘 드러낸 에우로파 갈란테의 연주로 빛을 발했다. 연주자들의 몸이 약간 덜 풀린 듯한 느낌이었지만, 독일적인 프랑스 음악이라는 느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들의 연주는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보스트리지와 더욱 여유 있는 앙상블을 이루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안 보스트리지는 정말 키가 크다. 오르간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사람도 클수록 저음 가수이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파바로티나 도밍고도 특별한 경우다. 그러한 신체의 장점은 바로 저음이 풍부한 테너, 결과적으로 울림이 풍부한 테너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보스트리지의 첫 곡은 안토니오 칼다라의 오라토리오 <요아스> 중 ‘이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안다네’였다. 칼다라의 전형적인 반음계 진행과 선율미가 잘 드러나는 이 아리아는 보스트리지와 아주 잘 어울렸다. 화끈한 고음이 나오지는 않지만, 강렬한 불협이 협화음으로 해결되는 짜릿한 순간을 감정으로 표출해내는 바로크적 어법이 세련되게 나타나는 이 곡을 보스트리지는 마치 자신의 곡처럼 해석했다.

이러한 바로크 아리아의 특색 있는 음색은 앙코르로 이어진 헨델의 오페라 <아리오단테> 중 ‘Scherza infida’에 이르기까지 전체 프로그램을 지배하는데, 보스트리지의 감성이 가미된 섬세한 바로크의 장식음들은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사실 잘 모르는 곡을 듣고 감동을 얻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카스트라토나 소프라노의 비르투오시티가 돋보이는 작품에 가려 뒷전에 있던 바로크 테너들의 레퍼토리가 빛을 보게 된 이번 작업은 이안 보스트리지의 음악 여정에서 무엇보다 의미 있는 작업, 성공적인 모험이 아닐까 한다. 보통 피아니스트와 함께하는 독창회와는 달리 에우로파 갈란테와 같은 다이내믹한 바로크 앙상블과의 어우러짐, 따뜻하고 풍성한 울림을 가진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의 음향은 연주의 완성도를 올리는 데 큰 몫을 차지했다. 이안의 피아니시모를 받쳐주는 에우로파 갈란테의 피아니시시모의 연주는 오래 기억에 남을 장면이 될 것이다.


성남아트센터 제공
/글. 박승희 바로크 테너・바흐솔리스텐서울 음악감독 /사진. 최재우 홍보미디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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