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작은댁'… 상처받은 설움만 흥건

  • 신정선 기자

입력 : 2011.11.23 23:41

연극 '그 여자의 소설'

연극‘그 여자의 소설’에서 작은댁(성병숙·오른쪽)과 큰댁(박혜수)이 김씨(공호석)와 함께 오랜만에 나들이에 나섰다. /극단 완자무늬 제공
그저 엄마이기만 했으면 좋으련만, 언제나 '작은' 엄마였다. 일제 말기, 그 여자는 아들 못 낳는 큰댁 밑에서 작은댁으로 살아야 했다. 열여섯에 시집가서 열여덟에 딸 하나 낳고 사는데 남편이 만주로 독립운동한다고 떠나버렸다. 배는 고프고 곳간은 비어갔다. 아들 하나 낳아주면 쌀 한 가마 준다고 해 김씨댁 씨받이로 들어갔다. 야속한 것은 세월이라 아들 낳고도 돌아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큰댁을 미워할 수도 없었다. 작은댁을 동생처럼 돌보는 큰댁 역시 자기 몫의 고통을 감내하는 불쌍한 여자였다.

연극 '그 여자의 소설'(연출 강영걸)에 나쁜 사람은 없다. 그나마 포악한 김씨도 남존여비·남아선호 시대의 초상일 뿐, 악한은 아니다. 그지없이 착한 사람들이 시대에 희생되고 상처받은 설움만이 흥건하다.

평일 저녁 공연장에는 중장년 여성이 많았다. 본남편을 만난 작은댁이 "얼른 장가가세요"라며 체념하고 돌아설 때, 남의 집 식모로 들어간 딸과 울면서 헤어질 때 그들 사이에서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차마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사연이 대하소설을 이루는 우리 시대 할머니와 어머니들이었다.

2001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고(故) 엄인희 작가의 '작은할머니'가 원작. 주연을 맡은 성병숙의 차분한 눈빛이 호소력을 더한다.

▶27일까지,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 (02)743-9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