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11.22 23:16
[故 피천득 선생 외손자 스테판 피 재키브, 25일 내한공연]
부모는 과학자가 되길 바랐다…
하지만, 6살 꼬마는 할아버지 서재서 브람스를 듣고 음악의 꿈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야심차게 20세기를 연주하다
'앙상블 디토'의 멤버로 잘 알려진 그가 오는 25~27일 한국에서 두 번째 리사이틀을 갖는다. 2009년 첫 리사이틀에서 브람스 '소나타 3번'을 연주했던 그가 이번에는 '모험'을 택했다. 한국 관객이 낯설어하는 20세기 작곡가들로 꾸민 것. 스트라빈스키의 '이탈리아 모음곡'으로 시작해 미국 작곡가 코플란드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루토스와브스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수비토'를 거쳐 슈트라우스의 '바이올린 소나타'로 마무리한다.
22일 광화문에서 만난 그는 "스트라빈스키나 슈트라우스는 지하철 타고 스마트폰을 쓰는 인물이 아니다. 브람스와 별 차이 없는 시대를 살았던 100년 전 인물일 뿐"이라고 했다. "베토벤이 한창 아플 때 작곡한 후기 작품은 현대음악보다 더 듣기 불편하고 충격을 주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베토벤은 편하게 들으면서 현대음악은 슬슬 피해요. 인간의 감정을 노래하는 건 똑같은데 말이죠."
그는 현대음악을 옹호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슈트라우스 이후 위대한 작곡가들이 많은데 어렵다고 안 들으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돼버릴 것"이라는 게 그의 걱정. 그는 "코플란드의 소나타에서 끊임없이 뎅그렁거리는 종소리를 잘 들어보라"고 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죽은 벗에게 작곡가가 보내는 울림이 애팔래치아산맥의 광활한 풍광을 배경으로 우리 가슴을 저밀 거예요." 엄청난 독서광답게 표현이 문학적이다.
◇안네 소피 무터의 팬이었던 할아버지
SAT(미 대입 자격시험) 만점, 하버드대 졸업, 물리학자 부모 등 재키브의 이력에는 음악과 관련 없어 보이는 것들이 많다. 심리학을 전공했고, 콩쿠르 압박을 느낀 적도 없다. 그럼에도 유명 악단들과의 협연이 2013년까지 꽉 찼다. 올해 초 런던필과 협연한 야닉 네제 세갱은 내년 로테르담필 협연자로 그를 다시 초청했다.
모친 피서영씨와 부친 로먼 재키브씨는 외아들이 부모의 뒤를 이어 과학자가 되길 바랐다. 하지만 그는 네 살 때 바이올린에 빠졌다. "외할아버지 댁 서재에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의 포스터가 커다랗게 걸려 있었어요. 카라얀이 지휘하고 무터가 연주하는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비디오도 자주 보여주셨지요. 외할아버지는 제가 예닐곱 살 적부터 브람스를 들려주시며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베토벤이라는 거대한 존재 앞에서 중압감에 시달렸던 브람스는 첫 교향곡을 쓰는 데 20년 가까이 걸렸지만, 그 고뇌가 담긴 덕분에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이라는 찬사를 받았다고 말이죠." "매년 여름이면 한국에 와서 외할아버지와 코리안 체스(장기)도 두고, 그림도 보러 다녔다"는 그는 "특히 외할아버지가 클래식을 항상 듣고 계셨기 때문에 내 삶에도 물처럼 스며든 것 같다"고 했다.
▶Modern&Modernity=25일 오후 7시30분 부산 영화의전당, 26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7일 오후 5시 대전 문화예술의전당 아트홀, (02)318-43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