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천재 무용가 최승희, 감춰진 동영상 나왔다

  • 전병근 기자

입력 : 2011.11.18 03:02 | 수정 : 2011.11.18 05:25

신나라레코드, 탄생 100주년 맞아 미공개 자료 공개

video_0
무용가 최승희 미공개 영상 첫 공개
젊은 날, 한반도와 일본 열도 그리고 유럽까지 매혹시켰던 뇌쇄적인 자태는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동영상 속의 그녀는 40대 나이가 무색하게 우아한 춤사위를 선보이고 있다.

비운의 천재 무용가 최승희(1911~1969)의 미공개 무용 동영상과 무용음악곡이 국내에 처음 공개됐다.

신나라레코드(회장 김기순)는 최승희 탄생 100주년(24일)을 맞아 그의 무용 동영상·음악 등을 담은 DVD와 CD 출간을 앞두고 미공개 자료를 본지에 공개했다. DVD에는 최승희의 장구춤 독무와 부채춤 군무를 포함해 자신이 안무를 맡은 무용 동영상 4편이, CD 3장에는 최승희가 직접 작곡한 무용음악 등이 실렸다.

그동안 국내에 소개된 최승희 관련 자료들은 주로 그가 1946년 월북하기 이전의 것이었다. 김연갑 한민족아리랑연합회 이사는 "이번 자료는 최승희가 월북한 이후 숨지기 전까지 생애 후반기의 예술 세계와 활동상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무용가 최승희가 1950년대 북한에서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장구춤을 추는 모습(위 큰 사진) 등 동영상 4편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들 동영상은 1961년 북한을 방문한 일본 국회의원이 최승희측으로부터 넘겨받아 보관해온 것이다. 아래 사진들은 일본과 유럽을 넘나들며 활약하던 최승희의 전성기 시절 모습. /신나라레코드 제공

이 자료들은 1961년 일본 사회당(현 사민당)의 호아시게이 의원이 최승희 무용단의 일본 초청을 추진하기 위해 방북해 최씨 부부로부터 입수해 보관해온 것들이라고 신나라레코드사는 밝혔다. 당시 최승희의 일본 초청은 일본 정부가 물밑 '한일조약' 교섭 중이어서 허가되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에서 북한 예술을 연구해온 리철우 코리아음악연구소 소장은 "이번에 공개된 동영상들은 40대 이후 최승희의 원숙한 춤사위를 보여준다"며 "한민족이 낳은 20세기 불세출 예술가의 세계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강원 홍천 출생인 최승희는 18세 때인 1929년 서울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세우고 당시 '무용=기생의 춤'이라는 통념을 허물었다. 두 차례 일본 유학 후 국내에 근대 무용을 선보이며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1930년대 후반에는 해외 순회공연을 벌이면서 세계적인 명성까지 얻었다. 그러나 일제 말기 조선총독부 요구로 만주 등지로 일본군 위문공연을 다닌 이력 때문에 '친일' 낙인이 찍혔다.

광복 직후인 1946년 남편인 문학평론가 안막을 따라 월북해 인민배우 칭호를 받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기도 했다. 1958년 안막이 숙청되면서 덩달아 숙청됐다는 소문이 나돌았으나 2003년 북한이 방송을 통해 사후 복권됐다고 발표했고 묘지는 애국렬사릉으로 이장된 것이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