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청중·래틀·베를린필이 협연한 '마지막 20초 정적'

  • 김경은 기자

입력 : 2011.11.18 01:15

베를린 필하모닉 말러 교향곡 9번

지난 15일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베를린 필하모닉이 아다지오(adagio·매우 느리게)로 말러 교향곡 9번을 끝내는 순간, 홀은 숨 막힐 듯한 침묵에 휩싸였다. 사이먼 래틀은 마지막 음(音)이 사라진 뒤에도 20여초간 지휘봉을 내리지 않았다. 객석의 박수는 래틀의 손이 완전히 아래를 향했을 때에야 비로소 터져나왔다. 이 곡은 섣불리 '브라보'를 외쳤다간 다른 청중의 몰입을 방해하는 행동으로 찍히기 십상. 한국 청중과 래틀, 베를린필이 한마음으로 연주한 최고의 '침묵 악장'이었다.

하반기 최대 화제작으로 기대를 모았던 베를린필 내한공연이 15~16일 이틀간 예술의전당·세종문화회관에서 펼쳐졌다. 세계 최고(最高)의 교향악단의 연주는 어떤 인상으로 남았을까. 첫날 연주한 말러 교향곡 9번에 집중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지난 15일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말러 교향곡 9번을 연주하고 있는 지휘자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먼지처럼 소멸하는 생명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이 곡을 참 사랑했다. 말러를 '음악적 예언자'에 비유했고, 그의 교향곡 전곡(全曲)을 두 차례 녹음했다. 그러면서 9번의 마지막 악장을 'Let it go'라 표현했다. 삶에 대한 집착, 애증, 환멸, 회한을 다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귀에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음이 소멸하는 부분에서 나 역시 삶과 나 자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사람이 이렇게 먼지로 사라질 수 있구나…. '음악은 살아있다'는 흔한 명제를 온몸으로 느낀 몇 안 되는 연주 중의 하나였다."(김영욱·서울대 음대학장)

말러 9번 실황 연주의 최고봉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실황으로 들을 수 있는 말러 9번의 최상급이었다. 특히 1악장에서 팀파니가 처음 나오는 부분에서 숨이 턱 막혔다. 타악기는 감정 표현이 어려운데, 발레리나가 등 근육으로 절망을 얘기할 수 있듯 음계가 따로 없는 팀파니로 절망과 발작, 환희를 표출하더라. 악기를 치는 속도와 세기를 주도면밀하게 계산한 결과다. 다만 여러 춤곡을 모아놓은 2악장은 살짝 밋밋해서 아쉬웠다. 왈츠는 죽음의 화두를 농담처럼 건네듯 좀 더 광적이어야 하고, 랜틀러(오스트리아 민속 무곡)는 다소 느리면서 다분히 시골스러워야 하는데 말끔하게 다듬어진 느낌이었다."(김문경·음악 칼럼니스트)

고성능 악단, 고성능 음질


◇"래틀은 베를린필이라는 명기(名器)를 연주하면서 카라얀과 아바도의 해석을 답습하기보다 현대음악과 조우하는 근육을 썼다. 2악장에서 랜틀러와 왈츠가 느리고 빠르게 교차하는 부분에서 래틀은 악기들을 흐름 속에 그냥 놔두지 않고, 악기가 저마다 자기 소리를 내게 허락해서 왁자지껄한 저잣거리를 재현해냈다. 단원들의 수준도 고성능이었다. 특히 호른은 다루기 힘든 악기인데 음이탈을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맑았고, 트럼펫과 트롬본도 특유의 째지는 소리 없이 음을 둥글게 만들어 단원 개개인이 입체적 음색을 만들어낸다는 인상을 받았다."(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