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은 활, 한 사람은 건반… 일흔의 두 친구 농익은 화음

  • 김경은 기자

입력 : 2011.10.23 23:40

첼리스트 나덕성·피아니스트 신수정, 베토벤 소나타 전곡 도전

첼리스트 나덕성(70·중앙대 명예교수)과 피아니스트 신수정(69·전 서울대 음대학장)은 1960년대에 베토벤의 본고장인 독일오스트리아에서 정통 클래식을 배우고 돌아온 대한민국 1세대 연주자들이다. 어느덧 고희(古稀)에 들어선 두 사람이 오는 11월 6일과 12월 18일 두 번에 걸쳐 베토벤의 '피아노와 첼로를 위한 소나타' 전곡(1~5번) 연주회를 연다. 복잡한 기교와 곡당 10~20분을 넘나드는 길이 탓에 하룻밤에 한 곡도 제대로 소화하기 힘든 곡을 한꺼번에 모두 펼쳐보이겠다는 것이다.

지난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모차르트홀. 공연장 문을 열자 백열등만 켜진 무대에서 말없이 연주에 심취한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신수정의 피아노는 힘이 넘쳤고, 나덕성의 첼로는 묵직했다.

지난 20일 모차르트홀에서 만난 나덕성(왼쪽)과 신수정은“같이 있어도 한 사람은 건반 치고, 한 사람은 활 긋느라 바빠서 거의 안 쳐다봤더니 얼굴 보기가 부끄럽다”며 쑥스러워했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40여년 전 이미 두 사람과 베토벤은 인연이 있었다. 1970년 6월 4일. 20대 후반 나덕성과 신수정은 베토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서울 시민회관대극장(세종문화회관)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3중주 '7번', 일명 '대공'을 연주했다. 바이올린은 베를린 필 제1악장 토마스 브란디스가 맡았다. 신수정은 국립음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서울대 음대 교수로 일하고, 나덕성은 국립교향악단(KBS교향악단)에서 연주하던 시절이었다.

그후 두 사람의 인연은 깊었다. 하지만 이날 카메라 앞에 선 이들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얼굴 마주보고 얘기하는 건 오늘이 처음" "아유, 영 어색하네!"하며 멋쩍게 웃었다. "만날 자기 악기만 연주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라 했다.

"신 선생은 상대방의 활 끝을 이해하는 피아니스트예요. 자기 연주가 끝났다고 앞으로 쌩 나가지 않고, 제 활이 소리를 다할 때까지 기다리죠."(나)

"템포가 좀 느려진다 싶어 쳐다보면 뭐라 말하지 않아도 바로 알고 같이 박자를 찾아가요. 그러니 말이 필요하겠어요?"(신)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가 처음인 두 사람은 "하면 할수록 어려워 죽겠다" "우리가 이걸 왜 선택했나 몰라"하며 혀를 내둘렀다. "베토벤은 연주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작곡가"라는 것이다.

"베토벤은 단순해 보이는데 악보 곳곳에 복병이 있어서 음표가 손가락에 딱 달라붙질 않아요."(신)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해야 음이 반짝거리고 나와요, 숨어있던 거지."(나) 그래도 이들은 "베토벤은 흉볼 수가 없다"며 "하면 할수록 아름답고 고난과 역경이 묻어나서 참 깊은 음악"이라 했다.

칠십 평생 살며 어찌 힘든 일이 없었을까. 나덕성은 2005년 콩팥 한쪽에 생긴 암 덩어리(3.8㎝ 크기)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다시는 첼로를 못할 줄 알았던 그를 살린 건 역시 첼로였다. "악기를 잡으니 옛날의 좋은 기운이 올라왔어요. 진통제 대신 악기로 버텼지요."

나덕성은 "조금 힘이 달릴지도 모르겠지만 내 마음의 음악은 아직도 나를 환하게 비춘다"며 "일흔 살 동년배의 농익은 화음을 기대해달라"고 했다. 신수정은 "정통(正統)에 근접한 베토벤을 들려주겠다"고 다짐했다. 12월 연주회 때에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62) 한예종 교수가 가세해 베토벤의 피아노 3중주 '4번'도 함께 들려준다.

▶베토벤 아벤트=11월 6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12월 18일 오후 8시 모차르트홀, (02)2273-4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