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콤비 10년 장수 비결… "이성으로 안 봐요"

  • 허윤희 기자

입력 : 2011.10.20 03:11 | 수정 : 2011.10.20 16:30

'지하생활자들'로 12번째 뭉친 극작가 고연옥·연출가 김광보
金 연출작 본 高 "압도되는 느낌" 高 대본 읽은 金 "숙명이라 생각"
그렇게 뭉친 뒤 싸운 적도 없어… "정점 찍었다는 칭찬에 변화 줬죠"

"우린 그냥 무덤덤한 사이에요."

연극계 소문난 명콤비에 '10년 장수 커플'의 비결을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둘 다 심드렁한 표정이다. 국립극단의 신작 '지하생활자들'로 다시 뭉친 극작가 고연옥(40)과 연출가 김광보(47). 이들이 함께 만든 12번째 작품이다.

"지난 4월 초연된 '주인이 오셨다'를 보고 사람들이 '고-김' 콤비의 정점을 찍은 작품이라고 그러대요. 그 말 진짜 부담됩디다. 정점이라는 건 '느그들 이제 그만 내려오라'는 거 아닙니까? 이젠 스스로 변화해야겠다 싶었죠."(김)

'지하생활자들'은 밑바닥 인생의 이야기를 전래민담 뱀신랑설화와 결합해 열린 형식의 굿판으로 보여준다. 김씨가 "전통적인 마당의 형식을 차용한 '열린 연극'을 시도했다"고 하자 고씨는 "내 의도와는 다르게 연출님이 마당극 형식으로 펼치니까 재밌더라"고 했다. 이들 콤비에게는 2기의 시작이다.

"고 작가 특징이 서사가 불분명한 듯하면서도 연결돼 있어서 사람을 몹시 힘들게 만드는 거예요. 더구나 이 작품은 '꿈'으로 연결돼 있어서 서사가 뭉개져 있는데, 이걸 어떻게 무대화시킬까 고민하다가 전통 연희의 마당을 끌고 온 거죠."(김)

김광보 연출가(왼쪽)와 고연옥 극작가.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부산 출신인 둘은 1999년 부산문화회관 소극장 페스티벌에서 처음 만났다. 고씨는 "각자 자기 작품 들고 왔는데, 김 연출님이 만든 작품이 정말 좋았다. 깔끔하면서 안정감 있는 연출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결혼하고 서울로 올라온 고씨가 2001년 '인류 최초의 키스' 대본을 김씨에게 보냈고, 김씨는 대본을 읽자마자 고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거 같이 합시다."

김씨는 "읽자마자 빨려들었다"며 "숙명이었죠, 숙명"이라고 했다. 이후 두 사람은 '웃어라 무덤아'(2003년), '발자국 안에서'(2007년), '주인이 오셨다'(2011년) 등 사회성 짙은 문제작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함께 한 지 10년. 작품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 시작한 건 올해부터라고 했다. 김씨는 작년까지 단 한 번도 작품에 대해 질문한 적이 없었고, 작가 역시 연출가가 해석한 연극을 보고 느낌을 말한 적이 없었다. "우린 싸운 적도 없어요. 서로 삐쳐서 돌아섰던 시절은 있었지만."(김)

시사잡지 기자 출신인 고연옥은 연쇄살인 등 강력범죄에서 글감을 찾는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사건·사고 전문 작가'. 이번 작품의 직접적 동기는 2009년의 강호순 사건이라고 했다. "추락하는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죠.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인생의 바닥에서 남들의 상승을 지탱해주는 지하생활자들. 인간 이하의 존재로 전락한 이들에 대한 구원을 모색한 작품이에요."

연극‘지하생활자들’은 우리 사회 저변에 존재하는 지하 세계의 어두움이 아니라 밝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연옥 극작가와 김광보 연출의 12번째 작품이다. /국립극단 제공
서로에 대한 장단점을 꼽아달라고 했더니 김씨가 먼저 말했다. "고 작가 장점이야 깊은 내공에서 나오는 필력이죠. 너무 깊어서 탈이지. 그게 장점이자 단점이에요." 고씨는 "김 연출님은 희곡에 대한 일차적 분석이 굉장히 철저하고 혹독한 연출가"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니 제가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웃음) 굉장히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작가인데, 이제는 내가 모를 지경에 이르렀으니. 요즘엔 새벽에 자주 통화하는데 제가 '제발 이렇게 난해하게 좀 쓰지 말라'고 합니다."(김)

이성(異性)이라 더 편하거나 불편한 것은 없을까? 두 사람이 손사래 친다. "우린 둘 다 중성이에요. 중성인 동성이죠!"

▶연극 '지하생활자들'=30일까지 서울 서계동 소극장 판, (02)3279-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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