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10.05 23:40
국립극장서 '파트 오브 네이처' 올리는 在獨 음악가 정일련씨
국립국악관현악단이 6~7일 오후 8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파트 오브 네이처(Part of Nature)―사람, 자연의 울림'을 올린다. '파트 오브 네이처'는 국악관현악의 웅장한 합주에 가야금·대금·아쟁 등 개성 있는 독주(獨奏)가 교차하는 6악장짜리 합주협주곡이다. 국악관현악인 '출(birth)'로 시작해 대금과 피리를 위한 협주곡 '숨(breath)', 가야금과 거문고를 위한 이중협주곡 '손(hands)', 해금과 아쟁을 위한 이중협주곡 '심(heart)', 김광규의 시 '이름'을 가사로 삼은 막간곡 '이름(name)'을 거쳐 꽹과리·장구·북·징을 위한 협주곡 '혼(spirit)'으로 끝난다.
작곡자는 독일에서 활약 중인 정일련(47)씨. 올해 말 임기가 끝나는 황병기(75)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이 임기 중 위촉했다. "1960년대 중반 국악관현악이 생긴 이래 만들어진 최장(연주시간 80분)의 작품이자 최초의 합주협주곡"이라고 황 감독은 설명했다. 클래식을 전공했지만 국악에도 조예가 깊은 정치용 한예종 교수가 지휘봉을 잡고, 해금 강은일·소리 왕기석 등 국내 정상급 연주자 11명이 협연하는 것도 특징이다.
◆베를린의 택시운전사
한국인 이민 2세대인 정일련씨는 유아기 때 4년을 빼곤 독일에서 태어나 줄곧 거기서 자랐다. 19세 때까지 국악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최근 방한, 광화문에서 만난 그는 "어머니가 주신 카세트테이프로 가야금 산조를 처음 듣고 귀가 확 뒤집어졌다"고 했다. 베를린 공대(환경공학)에 입학한 지 한 학기 만에 그만두고 4년간 기타를 배웠다. 음색이 가야금과 가장 비슷한 것 같았다. 노발대발하는 아버지를 피해 독립, 먹고살려고 택시를 몰았다. 그는 "택시운전사 자격시험이 인생에서 제일 어려웠다"고 했다. 서울만큼 넓은 베를린 지리를 뒷골목까지 외워야 했고, 300m 실수하면 바로 떨어졌다.
베를린에 공연 온 사물놀이패 김덕수 선생에게 장구와 가락을 직접 배우면서 우리 고유의 리듬에 푹 빠졌다. 장구는 국악계의 피아노였다. 궁중음악부터 무속음악까지 안 끼는 데가 없었다. 25세 때 작정하고 베를린 음대(현대음악)에 들어갔고, 5년 뒤 국악에 본격 입문했다. 그 후 지금까지 그가 작곡한 작품은 30여 개. 그중 '파트 오브 네이처'가 가장 길다. 2009년 동양악기와 서양악기를 위한 'AsianArt(아시안아트) 앙상블'을 창설, 예술감독 겸 장구 연주가로 활동 중이다. 작품은 한국뿐만 아니라 독일·프랑스·네덜란드·벨기에·폴란드·미국 등에서 활발하게 연주되고 있다.
◆잡음(雜音)의 깊은 맛
정일련씨는 "'파트 오브 네이처'의 방점은 장단과 음색에 찍혀 있다"고 말했다. 굿거리 등 기존 장단을 가져다 쓰지 않고, '덩 더쿵 쿵 더궁'이 들어간 장단을 새로 만들었다. 서양식 악보에 적으면 모든 마디가 다른 박자를 갖고 있는 것처럼 속도가 제각각이지만 크게 보면 한 장단이 길게 이어진 형태로 돼 있다. 이지영(가야금 협연) 서울대 교수는 "시작부터 끝까지 손가락이 쉬는 데가 없어 100m 달리기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복잡한 현대음악 선율에서 한국의 장단이 느껴져 연주할수록 즐겁다"고 했다.
'잡음'이 뒤섞인 국악기 본연의 소리도 고스란히 살렸다. "서양악기는 정확한 음을 깨끗하게 내지 않으면 화음이 깨지기 때문에 개량을 거쳐 잡소리를 없애지만 국악기는 옛 상태 그대로 잡음까지 음으로 소화합니다." 예를 들어 가야금은 줄을 짚고 흔들거나 세게 뜯을 때, 줄이 삐걱대고 손톱이 나무판에 부딪히는 소리가 같이 난다. 대금에는 일부러 구멍을 뚫어 얇은 갈대로 된 '청'을 붙인다. 고음에 거슬리는 소리를 넣어 날카로운 느낌을 주기 위해서다.
정씨는 "독일어에 'begeistern'이란 단어가 있는데 우리말로 '신난다'는 뜻"이라며 "연주를 하고 듣는 모두가 신나는 세상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는 "플루트는 스케일이 빠르고 12음계도 다 낼 수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대금은 음을 가늘게 떨다가 갑자기 아래로 툭 꺾고 다시 급상승시키는 기교를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다"며 "우리 악기에 맞는 곡을 만들어서 결을 제대로 살릴 줄 아는 국악 작곡가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Part of Nature=6~7일 오후 8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02)2280-41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