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英서도 드문 시리즈 뮤지컬, 한국에서 유독 활발한 이유는?

  • 허윤희 기자

입력 : 2011.10.06 00:29

공연장 오래 빌리기 힘들어 익숙한 브랜드로 관객 찾아

영화 '007'과 '스파이더맨', '해리포터', '스타워즈'…. 1편의 인기를 바탕으로 속편을 제작하는 것은 영화계에서 흔한 일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 공연계에도 시리즈 뮤지컬 제작 바람이 불고 있다.

시리즈 뮤지컬이 몰려온다

14일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뮤지컬 '바람의 나라:호동'은 2006년 '무휼'편에 이은 두번째 이야기다. 고구려 개국 초기 3대 가족사를 다룬 김진의 원작 만화를 토대로 만든 창작뮤지컬로 3부작 시리즈로 기획됐다. 주미석 서울예술단 PD는 "원래 2001년 한편짜리 뮤지컬로 만들었다가 스토리가 워낙 방대해 흥행에 실패한 후 3회 시리즈로 바꿔 기획했다"고 했다.

지난 8~9월 대학로에서 선보인 창작뮤지컬 '셜록홈즈'는 처음부터 3부작으로 기획된 공연. 흥행이 검증된 '셜록홈즈'라는 캐릭터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시즌제 뮤지컬'을 표방했다. 제작자인 한승원 프로듀서는 "두 시간짜리 공연 하나에 셜록 홈즈를 녹여내기엔 무리여서 시즌별로 독립된 에피소드를 전개하는 전략을 택했다"고 했다. 1편 '앤더슨가의 비밀'은 15~16일 제주도 제주아트센터, 11월 4~6일 부산 공연으로 이어지며 2편은 내년에 개막한다.

라디오 여자 PD와 인기 아이돌 가수 출신의 DJ가 티격태격 사랑을 키워가는 이야기인 뮤지컬 '온에어'는 2008년 초연돼 시즌4까지 나왔다. 시리즈 뮤지컬의 대표주자라 할 '넌센스'도 시리즈 6편에 해당하는 '넌센세이션'으로 돌아온다. 다섯 수녀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 모금 공연을 하면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담았다. 이달 18일부터 두달동안 이화여대 삼성홀에 오른다.

3부작으로 기획된 뮤지컬‘바람의 나라’중 두 번째 이야기인‘호동’편(위 사진). 아래는‘넌센스’시리즈 6편‘넌센세이션’의 지난해 초연 장면이다. /서울예술단·샘컴퍼니 제공
왜 시리즈인가

속편 제작은 뮤지컬 본고장인 미국과 영국에서도 흔치 않은 일. 영화처럼 단기적 흥행 성공이 불가능하고 많은 이들이 보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한 뮤지컬의 특성상 시리즈 제작은 도박에 가깝다는 평이 많았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1986년 초연 이후 24년이 지나서야 속편인 '러브 네버 다이즈'를 만들었지만 "환상을 깨뜨렸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넌센스' 시리즈처럼 성공한 시리즈물로 안착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최근 시리즈 제작이 유행하는 이유는 뭘까. 뮤지컬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한국의 뮤지컬 시장으로 인한 특수 상황"이라며 "한국은 공연장 장기 대관이 불가능해 앙코르 공연 때 돈을 버는 시장이라 익숙한 브랜드 파워를 갖고 가면서 단순 재연을 피해가는 방법으로 제작자들이 시리즈를 생각해낸 것"이라고 했다. 이미 공연을 본 관객들을 계속 끌어들이기 위해 공연계가 '시즌제 뮤지컬'이라는 차선책을 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1편은 재밌고 2편에서 여운을 남긴 후 3편에서 결말을 내는' 영화 3부작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무리다. 뮤지컬은 워낙 고가(高價)의 공연이기 때문에 속편을 위해 1편의 기승전결을 깨뜨렸다간 관객의 외면을 받기 십상이다. 주인공 배우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다. 원 교수는 "1년에 서너편 정도 작품을 하는 배우들을 영화에서처럼 몇 년동안 묶어두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해가 지나서 주연 배우가 바뀌면 관객이 공감하기 힘들어 시리즈 제작은 여러모로 리스크가 크다"고 했다. 더블·트리플 캐스팅으로 가뜩이나 주인공 이미지를 구축하지 못하는 뮤지컬계가 풀어야 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