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9.29 09:55
오래된 이야기는 아니다. 천륜이라 부르던 관계가 어그러지기 시작하고, 부모와 자녀가 서로를 해하는 것이 더 이상 천인공노할 일이 아니 돼버린 세상이. 그래서 지금 이 시대에 연극 <늙은 자전거>가 더없이 절절한 울림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삶의 뒤안길에서 마주하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실려 있는 이 작품이 따뜻하게 눈물 나는 이유다.
2011 성남문화재단이 새롭게 선보인 공연 시리즈, '만원滿員연극' 세 번째 작품으로 이만희 작가의 '늙은 자전거'가 무대에 오른다. 제목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연상되듯 무대에는 지난한 세월을 머금은 듯한 오래된 자전거 한 대가 서 있다. 시골 장터에 흔히 있을 법한, 잡동사니 가득 실은 자전거를 끄는 할아버지의 일상 역시 여느 때와 다르지 않다. 물론, 아버지가 객사해 보육원에 들어가야 할 한 아이가 그의 ‘손자’라며 찾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자전거를 끌며 자유롭게 살아가던 할아버지(강만)와 손자(풍도)의 만남, 그로 인해 발생하는 좌충우돌, 사건 사고를 정감 있고 구수한 사투리로 담아낸 연극 <늙은 자전거>는 평생 한번도 보지 못한 손자를 받아들일 수 없는 강만의 사투와 할아버지에게 쫓겨나면 보육원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풍도의 처절한 버티기 한판이다.
풍도를 보자마자 듣도 보도 못한 아이라며 단칼에 내치는 강만. 어쩔 수 없다고 보육원으로 돌아가자는 공무원의 손을 뿌리치며, 죽어도 거기만은 갈 수 없다는 풍도는 목이 터져라 ‘할배’를 부르며 울부짖는다. 결국, 수년 동안 생사도 모른 채 살아오던 강만과 풍도가 그렇게 한 지붕 아래 살게 됐다. 그런데 이 아이가 여간내기가 아니다. 짜장면 먹고 싶다고 룸살롱 전단지를 돌리다 경찰서에 잡혀가고, 자전거 모터 바꾸려고 모아 둔 강만의 쌈짓돈을 훔쳐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쪼매 고생스럽지만’ 할배 바짓가랑이 잡고서 절대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풍도는 고집불통에 뻔뻔스럽다. 하지만 그 모습은 옹고집에 괴팍하기로 소문난 강만과 많이 닮아 있다.
풍도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보육원에 돌려보내려는 강만과 “돈 벌어 타이탄을 사면 할아버지와 본격적으로 장사를 해볼 참”이라는 풍도는 어느덧 서로에게 가장 큰 응원군이 되어 있다. 늘 티격태격하던 그들이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소중한 존재로 남아 있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강만은 풍도에게 자전거를 직접 운전하게 해준다. 운전수가 된 기념이라며 장에 가면 새 모터도 달아주고, 짜장면도 곱빼기로 사주겠다고 말한다. 신이 난 운전수는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그리고 잠시 후 그런 풍도 옆에 앉아 흐뭇하게 웃고 있던 강만의 눈이 서서히 감긴다.
연극 '늙은 자전거'는 난생처음 만난 할아버지와 손자의 만남과 삶의 여정을 통해 가까이 있어서 더 쉽게 잃어버리는 ‘가족’의 소중함을 재발견하게 한다. 그것이 바로 구수한 사투리와 잊혀가는 시골 장터가 불러일으키는 향수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작품의 키워드다.
2010년 초연되어 관객들의 폭발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늙은 자전거'는 바쁜 일상에서 들여다보지 못하는 삶의 소중한 끈들을 따뜻한 감동으로 그려왔던 이만희 작가의 섬세하고 가슴 뭉클한 유쾌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information
일시 10월 6~8일 14시
장소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
문의 031-783-8000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