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섬 수도원서 만난 수녀들 천상의 미소… 천국이 따로 없더라

  • 이태훈 기자

입력 : 2011.09.21 23:17

정미연 '그리스 수도원 화첩 기행'

유난히 큰 달, 쏟아지는 별, 인적 하나 없는 산길, 세상 밖에 있는 태곳적 풍경…. 그리스 크레타섬의 '흐리소피기 봉쇄 수도원'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절벽의 꼭대기에 얹히듯 자리 잡고 있다. 수녀들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선한 얼굴로 동방에서 온 손님을 맞는다. 천년 넘게 신을 향한 기도와 헌신이 계속돼온 그곳, 화가 정미연씨의 마음이 먼저 소리쳤다. "아, 나는 천국에 왔구나!"

저자는 성화를 그리고 성물을 만들어온 미술가다. 지난해 9월 한 달 동안 바오로 사도의 길을 따라 터키그리스 22개 도시의 수도원과 성당들을 순례하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책 '그리스 수도원 화첩 기행-이곳은 모든 것이 깊다'(성바오로·사진)로 펴냈다. 한국 정교회의 초대 대주교를 지낸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가 직접 방문지를 선정해 줬고 순례의 절반 이상에 동행했다.

책은 터키와 그리스에서 만난 '깊고 장대하고, 초월적이며 찬란한,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찬탄으로 가득하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달리는 이스탄불 거리, 저자는 강물에 비친 이슬람 사원의 섬세한 선에 넋을 잃는다. 아테네 비잔틴박물관에서 화려한 성례 의복과 방대한 성화들을 만난 저자는 "영원을 향한 위대한 예술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리스어로 '공중에 떠 있다'는 뜻인 '메테오라' 지역에서는 깎아지른 절벽 꼭대기 혹은 절벽의 허리께에 붙어 있는 수많은 수도원들과 마주한다. 저자는 말한다. "세속과 분리된 곳, 메테오라에서는 누구나 깨달은 자가 된다"고. 책에 실린 그림 100여점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미루에서 26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열리는 전시 '하느님의 시간, 인간의 시간-그리스 수도원'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다. 개막일인 26일 오후 6시에는 그레고리안 성가와 시 낭송 등이 어우러진 출판 기념 음악회도 열린다. (02)720-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