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계시나요, 할머니

  • 뉴욕=김경은 기자

입력 : 2011.08.31 23:33

[뉴욕에서 만난 '클래식계 아이돌'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정신지체 전쟁고아 입양하고 날 음악으로 이끈 양조부모 하늘로
내달 여는 리사이틀 제목이 '기도'…
여러분도 내 연주 들으며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 깨닫길

"앉아 있어도 달리는 것 같아요. '달려! 리처드, 달려!' 하고 스스로를 계속 몰아붙이지요. 그렇게 안 하면 살 수 없으니까. '열심히 하는구나, 리처드! 그래, 내일 당장 죽는대도 후회 없이 살자!' 다그치며 혼자 흐뭇해해요. 2시간밖에 못 자서 머리가 빙빙 도는 상황에서도 말이지요."

29일 오후(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서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33)을 만났을 때, 그가 수십 번 반복한 단어는 'run(달리다)'이었다. "삶 자체가 달리기의 연속인걸요. 음악 세계를 넓히고, 청중을 이해시키고, 한 단계 도약하는 것 모두가 'run'이에요. 1분 1초도 멈출 수 없는 거지요." 전날 오후, 독일 베를린에서 브람스와 차이콥스키를 연주하고 뉴욕에 온 지 2시간이 채 안 된 때였다. 그는 오는 8일 경기도문화의전당 행복한대극장에서 '앙상블 디토' 리사이틀을, 10월 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자신의 리사이틀 '기도'를 연다.

깔끔한 외모와 유려한 연주실력으로 클래식계 아이돌로 통하는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미국 뉴욕의 마천루를 배경으로 연주를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비올라로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크레디아 제공

용재 오닐은 '클래식 음악계의 아이돌 스타'로 불릴 정도로 대중적 인기도 높다. 그는 5년 전 '앙상블 디토'를 만들었고, 그 덕에 파격의 상징이 됐다. 영상과 함께 공연하고, TV 광고와 패션 화보를 찍었다. 클래식 음악도 즐기는 거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연주 활동도 열정적이다. 최근 9일 동안 소화한 연주회가 7회. 미국·유럽·아시아를 제집처럼 들락거리며 사흘에 한 번꼴로 연주회를 연다. 연주 여행을 다닐 때에는 짐 싸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가방을 한꺼번에 3개씩 싸 놓고 번갈아 갖고 다닌다. 최근엔 뉴욕 링컨센터의 실내악 단체인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의 정식 단원으로 임명됐다. 월터 트램플러와 폴 뉴바우어를 잇는 세 번째 비올리스트다. 2000년대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연주자도 그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완고하고 보수적'이라 했다. "저, 애늙은이에요. 옷도 무채색으로만 입고, 술은 입에도 못 대서 다이어트 콜라만 마셔요. 동료들도 답답하다고 놀려요." 뜻밖이었다. 그는 "클래식은 그 본연의 정수를 제대로 잡아낼 때 비로소 온전한 매력을 살릴 수 있다. 집에서 면티에 반바지 차림으로 뒹굴다가도 악기를 쥘 땐 정장을 갖춰 입는 것도 그래서다"라고 했다.

10월 리사이틀 '기도'에서는 최근 발매한 6번째 솔로 음반 '기도(Preghiera)'의 수록곡 중 시벨리우스의 즉흥곡,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 등을 들려준다. "핀란드 작곡가인 시벨리우스는 작품 안에 조국의 파도 소리와 나무 내음, 시리게 푸른 하늘을 음표로 구현해낸 음악가예요. 독일 작곡가 브루흐는 독일 특유의 농밀한 낭만주의를 담고 있어 특히 아름답고요."

그는 "기도는 자기의 가장 나약한 모습을 절대자 앞에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며 "청중이 연주를 들으면서 지금 당장 옆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왜 '기도'이고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인가? "사람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버리면, 그 이전과 전혀 다른 사람이 돼요. 얼마 전 양조부모께서 모두 돌아가시면서 제 삶에는 폭풍이 몰아쳤어요."

6·25 전쟁으로 고아가 된 그의 어머니는 1958년 미국인 가정으로 입양됐다. 어머니는 어릴 때 앓은 뇌 손상으로 정신지체 장애를 겪고 있다. 양조부모는 어머니를 대신해 그를 길렀다. 미국 북서부 워싱턴주 시골 세컴에서 음악 공부를 하고 싶다는 손자를 레슨시키려고 할머니는 여든 나이에도 토요일마다 왕복 여섯 시간 운전대를 잡았고, 그 일을 10년간 한 번도 빼먹지 않았다. 할머니 사후 그는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점묘법'으로 유명한 조르주 쇠라의 그림을 보고 가슴이 요동치는 걸 느꼈다. 작고 사소한 부분을 살려서 의미 있는 큰 그림으로 만드는 작업의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가족과 시간의 소중함을 절감했고 위안을 느꼈다.

용재 오닐은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는 것처럼, 나는 사람들의 상처를 음악으로 다독여주겠다"고 했다. "왜냐하면 나는 기도하는 사람이니까." 빨대로 '다이어트 콜라'를 쭉 들이켜던 그가 순간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었다.


☞리처드 용재 오닐은


1978년 미국 출생. 어머니는 6·25 전쟁 고아로 미국에 입양됐다.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상 수상, 런던필 협연 등 '한국이 낳은 음악천재'로 불린다.


▶앙상블 디토 리사이틀=9월 4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02)580-1352

▶기도 리사이틀=10월 8일 오후 8시, 9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580-1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