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키우는 손… 피아니스트 김대진

  • 성남아트센터 월간 '아트뷰'
  • 글=남소연 편집장
  • 사진=송창래 Look Studio

입력 : 2011.08.30 09:43

국내 음악계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명교수이자 손열음과 김선욱을 키워낸 스승, 수원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 그리고 여러 페스티벌의 음악감독에 이르기까지, ‘음악’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김대진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7년 만에 선보이는 슈베르트 소나타 신보와 더불어 실로 오랜만에 리사이틀 무대를 앞둔 김대진을 만났다.

인터뷰가 진행될 당시에도 김대진의 일정은 빡빡했다. 국내 최초의 피아노 페스티벌을 표방하며 탄생한 '피스 앤 피아노 페스티벌'의 개막이 코앞인 데다 예술의전당 토요콘서트와 상임지휘자를 맡고 있는 수원시향의 연주까지 굵직한 일정만도 수두룩했다. 학생들의 레슨과 연습 일정까지 생각하면 짐작이 가는 강행군이다. 오고 가는 차 안에서 김밥으로 끼니를 대충 때우는 일상 덕에 “웬만한 대한민국 김밥은 다 먹어본 것 같다”는 그의 말이 수긍이 갔다.

“사실 상황적으로 음악 외적인 일을 할 여유가 없어요. 방학 기간이라고 해서 쉴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콩쿠르를 앞둔 아이들의 연습도 지켜봐야 하고, 오전에는 여러 리허설이나 연습 진행에 학교에서는 레슨이 이어지고, 밤에는 스코어를 공부하거나 글을 쓰곤 하죠. 최근 몇 년 동안은 뭔가를 준비하기 위해 다른 것을 놓을 수 없는 상태의 연속이긴 해요. 제 독주회가 있다 해도 일정한 여유 시간을 활용해 준비하는 그런 과정은 불가능해진 지 오래되었어요. 조금이라도 시간이 날 때마다 짬을 내서 연습하는 거죠.”

김대진은 이달 4년 만에 리사이틀 무대에 선다. 9월 25일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무대를 시작으로 부산과 대구, 서울 예술의전당으로 이어지는 네 차례의 여정이다. ‘song and poem’이란 주제로 슈베르트와 쇼팽을 들려주는 이 무대는 그동안 지휘자, 혹은 교육자로서 책임에 바빴던 ‘피아니스트 김대진’의 모습을 실로 오랜만에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이번 독주회는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시간입니다. 몰려드는 일이 너무 많긴 하지만, 그래도 피아노라는 끈을 놓을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승의 모습이건 지휘자건 간에 제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근본은 피아노니까요.”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D664와 D784, 쇼팽의 발라드 전곡으로 꾸미는 독주회 프로그램은 김대진이 7년 만에 발매하는 새 앨범과 흐름을 함께하는 자리다. 특히 이번 앨범은 김대진이 직접 만든 레이블에서 선보인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레이블의 이름은 라틴어로 멜로디를 뜻하는 칸투스cantus, 연주자의 음악적 자유와 꼼꼼한 기록을 위한 선택이다.

“지난해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슈베르트 소나타 녹음 작업을 진행했어요. 어차피 상업적인 의도로 작업한 음반이 아니니, 기왕이면 내가 만든 레이블에서 원하는 음악을 차근히 작업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반에 수록된 슈베르트 소나타는 이번 공연 프로그램과도 동일합니다. 쇼팽의 발라드는 시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고, 슈베르트 역시 노래에 근본을 두고 작곡한 만큼 둘 사이의 연관성은 많죠. 시가 없는 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연결의 의미도 있고요. 슈베르트와 쇼팽을 연주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노래와 시가 있는 음악입니다.”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와 다니엘 바렌보임, 미하일 플레트네프 그리고 국내로 눈을 돌리면 정명훈에 이르기까지, 피아니스트와 지휘자의 양쪽을 아우르는 거장들은 연주와 지휘 모두 인상적인 자취를 남겨왔다. 2008년 수원시향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김대진 역시 수원시향과 함께 성공적인 파트너십을 이뤄가며 지역 오케스트라의 긍정적인 발전상을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동안 나름대로 큰 밑그림을 그리면서 활동해왔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지휘자의 책임을 맡고 나니 쉽진 않더라고요. 상임지휘자의 역활이란 게 순수하게 음악적인 면만 책임지는 자리가 아니다보니 처음 1년 반까지는 참 힘들었죠. 세계적인 지휘자들처럼 멋있는 일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내 손길이 가야 하는 일이 무척 많더군요. 마치 하나의 국가처럼 사람이 살며 생기는 모든 일이 오케스트라 안에서 생기죠. 지내보니 오케스트라 역시 결국 사람 사이의 관계고 사람의 장입니다.” 작품이 아닌 인간을 가르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김대진은 그동안 순수 국내파로 세계 클래식 무대에서 혁혁한 성과를 이뤄낸 손열음과 김선욱을 키워낸 스승으로 이름이 높다. 반 클라이번과 리즈 콩쿠르 등 세계 메이저 콩쿠르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활약하고 있는 두 제자는 조기 유학을 택하는 대신 김대진의 손끝에서 ‘토종 클래식 키드’로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몇 달 전 손열음이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하며 ‘스승 김대진’에 대한 재조명과 인터뷰 요청은 여전히 쇄도하고 있다.

다만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제자들을 콩쿠르에 내보내는 스승의 입장에서도 콩쿠르 자체를 탐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콩쿠르의 주최 측은 단연 돋보이고 독특한 ‘개성’의 연주자를 선택해달라고 똑같이 요구하지만, 정작 그런 후보가 나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묵살해버린다. 재능을 분류하고 총점을 평균 내어 수상자를 결정하는 콩쿠르의 심사 관행은 곧 연주를 일종의 체육 기술로 판단하는 것이다”라는 피아니스트 러셀 셔먼의 말처럼 김대진 역시 콩쿠르는 “필요악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오늘날의 콩쿠르란 순수하게 예술성만으로 평가되는 제도는 아니거든요. 그렇지만 무명의 연주자들이 이름을 알릴 기회 역시 콩쿠르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얼마 전에 제자의 콩쿠르 준비 연습을 시키고 집에 가는 길에 갑자기 아이들도 나도 참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생전 처음으로 로또를 사봤어요. 이게 당첨되면 그 기금으로 아이들의 연주 활동을 후원할 수 있겠지 하고요. 그 정도로 쉽지 않은 작업이죠. 물론 세상에 쉬운 일은 당연히 없어요. 특히 예술적인 완성도를 빚어내기 위해선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학생 자신이 그런 부분을 어떻게 감당하느냐가 중요하겠죠. 그 과정을 통해서 얻어지는 장점도 분명 있을 테고요.”

김대진은 눈앞의 성과에 집착하는 대신 아이 한 명 한 명의 인격을 다독이고 이끌어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조언한다. 당장 조급하게 자녀들을 몰아세우는 부모들을 볼 때면 안타까움 역시 크다.

“속된 말로 뭔가 ‘비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 때 참 난감해요. 예술에 비법이 있을까요? 굳이 얘기하자면 곡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을 가르치려 해요. 예를 들어 성격이 급한 학생들은 전화 통화를 하다가도 말이 빨라지고, 길을 걸을 때도 속도가 빨라져요. 그런 근본적인 성향, 인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지켜보죠. 그러다보니 시간이 많이 필요해요. 몇 년을 꾸준히 지켜보고 가르치면 비로소 어떤 모양이든 간에 결과물이 서서히 드러납니다. 열음이나 선욱이를 롤모델로 삼는 부모들 중 ‘콩쿠르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학교는 다니지 않고 연습만 시키는 게 좋지 않느냐’는 위험한 생각을 가진 분들을 볼 때면 참 안타까워요.”

영재 위주의 성과주의는 김대진 스스로도 가장 경계하는 부분이다. 결과에 집착하는 순간, 교육의 순도는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선욱이와 열음이를 처음 가르칠 땐 지금과 같은 위치가 될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일단 잘해보자는 마음가짐이었죠. 그런데 이제 이 위치에 오고 사람들이 관심을 갖다보니, 나 스스로도 그런 성과에 대해 관심이 생기려는 마음이 고개를 듭니다. 다만 콩쿠르가 목표가 되거나 결과를 기대하는 마음이 되면 가르치기 힘들어져요. 아이들이 잘 연주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최대 목표라는 마음을 잊지 않고, 결과는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죠.”

김대진이 이야기하는 교육자의 역할은 ‘거울’이다. 학생들에게 거울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더불어,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린다”는 이야기는 그가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항상 믿는 문구 중 하나다. 

“아무리 거울을 들이대도 자신의 능력이 없으면 보이지 않아요. 거울을 보지 않으려는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죠. 그걸 알게 하고, 보이게 만들어주는 역할이 스승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몰랐던 스스로의 면을 속속들이 파악하게 되죠.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아야 그 부분부터 발전이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 지갑에 돈이 얼마 들어 있는지 알아야 어떻게 쓸지 계획이 서듯이 말이죠. 다만 깨달음의 시점에 다다르면 두 그룹으로 나뉘는 거 같아요. 잘못된 점을 개선하고 방법을 찾아가는 아이가 있는 반면 앞으로 알아야 할 것이 두려워 오히려 포기하는 경우도 생기죠.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이 모든 여정을 스스로 깨치고 스스로 일어나야 합니다. 스승은 그 과정을 함께해주는 사람입니다.”

피아니스트와 지휘자, 교육자 중 단 한 가지로 기억되고 싶은 역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대진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젊은 차세대 예술가들의 앞날을 밝혀주는 ‘음악의 거울’로서, 그는 지금 음악뿐 아니라 사람을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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