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8.30 09:45
영국 출신 안무가 아크람 칸이 '버티컬 로드'로 다시 한 번 국내 관객을 만난다. 실비 길렘, 줄리엣 비노쉬 등 유명 스타들과의 작업으로 이슈를 모은 아크람 칸이 인도의 전통 춤인 카탁과 현대무용을 접목, 다시 순수한 춤으로 중심축을 옮긴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담대하고 다이내믹한 안무로 인간의 본능적인 몸부림을 담아낸 그의 무대가 이제 곧 펼쳐진다.
나카자와 신이치의 대칭성 인류학에 따르면, 종교적 해탈이나 신의 은총이라는 궁극의 경지에는 일상과 다른 시간성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평범하게 흘러가는 일상 세계의 시간 속으로 돌연히 이질적인 구조를 가진 시간이 수직으로 침입해오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적인 추구 혹은 천상의 진리와 연결됨에 있어서 수직적인 것을 거론한다면, 시각적인 이미지보다는 이러한 ‘시간의 균열’을 일으키느냐의 여부가 관건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국 안무가 아크람 칸이 세속적인 흐름을 수평적으로 규정하고 이와 대조적으로 종교에서 말하는 ‘승천’과도 같은 깨달음의 길을 추구하는 수직적인 것의 화두를 붙드는 '버티컬 로드'를 이번에 들고 나왔지만, 그것을 어떻게 풀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춤꾼의 길을 종교적 구도 체험에 비유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고, 춤의 궁극적 경지를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은 대부분 춤꾼에게 있어서 보편적이라는 점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춤의 제의적 기원을 언급한다는 차원이라기보다는, 어떤 궁극적 지점에 도달하는 것 자체가 종교에서 해탈이나 깨달음을 얻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겨지곤 한다는 얘기다.
아크람 칸이 세기의 발레리나 실비 길렘 '신성한 괴물들', 2007이나 프랑스의 대표 여배우 중 한 명인 줄리엣 비노쉬 'in-i', 2009 등 스타들의 아우라를 기대하는 무용 작업으로 그동안 화제를 모은 반면, 이번에 그가 춤의 순수함으로 되돌아갔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바로 이러한 부분 때문일 것이다. 즉, 영성의 추구에 대한 비유인 ‘버티컬 로드’는 춤의 극단적 추구와도 맞닿을 수 있음이 전제되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인도 전통 춤인 카탁의 세례를 받았던 그는 그 어떤 다른 요소에 기댈 필요 없이 춤꾼인 그 자신을 전면으로 내세우며 스스로를 신화화하려는 것일까? 물론 그조차도 아직 알 수는 없다. 적어도 춤꾼으로서 정체성을 충만하게 구가하는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그는 인도의 전통적인 춤 요소들을 현대적으로 변용시키는 작업을 그 나름으로 능숙하게 수행해왔다. 인도의 신화적 스토리텔링을 양식화된 몸짓과 대응시키는 인도 춤의 관례는 심지어 랩과도 같은 현대의 분절적 스토리텔링이나 춤꾼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움직임과 중첩시키는 방식으로 변형되곤 했다. 더구나 실비 길렘이나 줄리엣 비노쉬와의 협업에서는 그녀들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신화화된 이미지 이면의 그 무엇, 여전히 비범하지만 진솔한 그 무엇을 끌어내는 시도로 어필하기도 했다.
스타들에게 쏠리는 대중의 이목이 필요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동서양의 몸과 몸짓을 나란히 병치하고자 하는 대담한 구도를 깔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듯하다. 영국 정부의 후원에 힘입어 국제적으로 커나가면서, 우리에게도 역시 익숙하지만 난제이기도 한 전통의 현대화 혹은 동서회통의 과제를 제법 무난하게 풀어나가는 비서구 안무가 정도로 인식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크람 칸이 춤 자체에 외곬으로 파고드는 무용수적 면모가 강한 안무가였던지를 생각해볼 때 이번 작품은 다소 의외로 다가오는 면도 없지 않다. 어떻든 서두에서 말한 이질적 시간성이라는 측면에서 춤이 선사하는 ‘황홀경’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일까? '성녀 테레사의 황홀경'이라는 베르니니의 17세기 조각상에서도 드러나듯, 신과 직통으로 합일되는 예외적인 순간은 엑스터시의 경지로 표현되고, 이를 수직으로 찔러서 꽂혀오는 듯한 시간적 체험으로 보는 것이 나카자와 신이치의 견해다. 좀 더 자세히 말해 이는 고통스러우면서도 환희가 흘러넘치는 ‘주이상스’를 일컫는다는 것이다.
수피의 수도승들이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현기증 나는 원무를 추면서 이런 엑스터시에 도달하고자 했다는 얘기는 어쩌면 아크람 칸이 구현하고자 하는 ‘버티컬 로드’를 압축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춤을 직접 추는 입장에서의 얘기 아닌가? 물론 경지에 오른 춤꾼을 지켜보면서 때로 말할 수 없는 경이에 사로잡히곤 하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것을 관객 각자에게 예외적인 시간 체험으로, 고통과 황홀이 함께하는 주이상스의 순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지금으로선 그것을 아크람 칸의 '버티컬 로드'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랄 수밖에.
information
일시 9월 30일 20시 / 10월 1일 16시
장소 LG아트센터
문의 02-200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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