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8.26 03:10 | 수정 : 2011.08.31 09:49
[17] 명동 주먹들과 나

서울 명동 오비스캐빈은 신세계였다. 그 신세계를 구성하는 일부가 주먹 세계였고 훗날 조영남 매니저가 된 김용웅씨와의 만남이 그 입구를 여는 열쇠였다.
그 세계에서 스물셋 나는 배짱이 두둑했으되, 그 배짱으로 한 번 큰 위기를 겪었다. 당시 내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오비스캐빈 단골이었던 유영희씨다. 그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이자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었던 고(故) 유한철씨의 딸이다. 국내 카지노 업계의 대부로 불린 고 전낙원씨와 이혼한 직후였다. 당시엔 조영남 형과 교제 중이었다.
오비스캐빈에서 같이 놀다 영남 형의 부탁으로 택시를 잡기 위해 함께 명동 길을 나섰다. 삼청교육대와 비슷한 성격이었던 재건대원 세 명이 길을 가로막았다. 그중 한 명이 그녀의 턱을 톡톡 건드렸다. "요거, 되게 예쁘네."
세 명과 싸움이 붙었다. 처음엔 압도했다. 앞차기로 그녀를 건드린 사내의 턱을 가격했다. 다른 두 명이 움찔했다. 좋은 예감이 들려는 찰나 순식간에 20여명이 몰려들었다. 재건대원이거나 그들의 부하들이었다. 당시 재건대원은 모두 짙은 남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서로를 알아보기 쉬웠으니, 싸움에 금방 몰려들 수 있었을 것이다.
20여명 앞에선 어쩔 수 없었다. 당시 내무부 건물로 가는 길가의 막걸리 집으로 끌려갔다. 그들 중 한 명이 손님들에게 "다 나가"라고 외쳤다. 술집은 순식간에 텅 비었다. 나와 그들뿐이었다.
그들은 나를 벽 앞에 세워둔 채 때리기 시작했다. 죽었구나 싶었다. 그때 술집 문이 열렸다. 김용웅씨와 조영남이었다. 유영희씨가 연락한 것이다. 당시 김용웅씨는 명동 신상사 조직의 중간 보스였다. 그가 나타나자 순식간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형님 나오셨습니까"란 인사가 곳곳에서 쏟아졌다. 그가 말했다.
"내일 윤형주가 사과할 거다. 오늘은 그만하고 다들 돌아가라."
다음 날 그들이 모인 다방을 찾았다. 십여 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내가 그 사이를 걸을 때 툭툭 내 발을 걷어찼다. 알고 봤더니 내게 턱을 맞은 이가 그들의 부두목이었다. 턱뼈가 금이 갔다고 했다. 김용웅씨의 말대로 그에게 사과했다.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으나 김용웅씨와 나의 관계를 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천진수란 사람도 그때 만났다. 당시 오비스캐빈 인근에서 술집을 운영했던 그가 어느 날 나를 불렀다. 자기 업소를 찾는 손님들이 늘 트윈폴리오 얘기를 해 궁금했던 것이다. 만나러 간 자리에 다른 남자 두 명이 더 있었다. 자기 후배라 했다. 술이 몇 번 돌고 나서 그가 말했다. "재미난 거 보여 드려라."
'꼽슬이'란 별명의 사내가 면도날을 꺼내 씹기 시작했다. 빠다닥 소리가 났다. 싱긋 웃곤 이번엔 유리컵을 씹었다. 다른 사내는 주방에서 오이를 가져왔다. 오이를 공중에 던져놓곤 땅에 떨어지기 전에 세 조각을 냈다. 칼은 이발소에서 쓰는 면도칼이었다. 황당했다. 내가 말했다.
"아니, 그렇게 할 일이 없느냐? 면도칼은 면도하려고 있는 거고 오이는 먹으라고 있는 거지, 왜 겁을 주려고 하냐? 차라리 한강에 나가 모래를 파라."
그 말이 씨가 될 줄 몰랐다. 몇 달 뒤 오이를 조각 냈던 사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형님 접니다. 저 지금 한강입니다." "거기서 뭐 하는데?" "모래 파라고 해서 모래 파고 있습니다."
골재 채취 사업에 뛰어든 그는 후에 큰 성공을 거뒀다. 내게 성공의 빚을 졌다고 생각했는지 종종 술을 사겠다고 연락 왔다. 그때마다 거절했다. 이미 술을 끊은 터였다. 주로 점심에 만났다. 그러나 그의 고집도 셌다. 결국 하루는 저녁을 대접하겠다는 약속에 응했다. 자리에 나가니 역시나 술판이 벌려 있었다. 그는 집요하게 술을 권했다. 계속 거절하자 그가 끝내 술상을 엎었다. "형님 평생 먹을 수 있는 술을 내가 사려고 이렇게 열심히 돈을 벌었는데, 형이 술을 끊었다니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다시 한 번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내가 "술보다 좋은 것이 있으니, 바로 신앙"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내 말을 믿었고 지금은 교회 집사가 돼 신앙 활동을 하고 있다.
▲8월 26일자 A23면 가수 윤형주씨가 기고하는 '세시봉, 우리들의 이야기'에서 "유영희씨는 고(故) 전낙원씨와 이혼한 직후"라고 했으나 두 사람은 결혼한 사실이 없어 바로잡습니다.
[키워드] 세시봉, 우리들의 이야기|오비스 캐빈|윤형주|삼청교육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