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과 연극 사이

  • 허윤희 기자

입력 : 2011.08.24 23:14

김연수·김애란 단편소설 무대로…
책 그대로 읽고 동작 많지 않지만 남녀 화자 나눠 감정 몰입 도와

무대 위에 서정적인 음악이 깔리면 남자가 낭독을 시작한다. "나무 한 그루. 하나의 가지는 북한산이 있는 북쪽을 향해, 또 하나의 가지는 한강이 있는 남쪽을 향해 서로 갈라져 서 있는 나무 한 그루에 대한 얘기…." 배경 스크린에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고, '꿈'이라는 제목이 뜬다. 서서히 잦아드는 볼륨. 남자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김연수 단편소설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을 무대로 불러온 '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소설은 6월 중순의 어느 날, 지하철에서 1년 전 이혼한 전처를 우연히 만난 남자의 이야기. 무대에선 소설 한 편을 다 읽어주지만 단순한 낭독은 아니다. 1인칭 시점의 '나'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소설과 달리, 연극에선 '나'(남자배우)가 주된 낭독자이지만, '전처'(여자배우)가 직접 등장해 문장을 나누어 읽는다. 여자는 '전처'가 한 말 외에도 남녀가 공유하는 기억, 느낌, 감정에 해당하는 문장까지 읽으며 상상력을 자극한다. 1인칭 소설의 행간에 숨어 있는 다양한 관점과 다층적인 겹을 끌어낸 다성(多聲)적 낭독이다.

김연수 소설‘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을 입체낭독하는 두 배우. /바나나문 프로젝트 제공

연출가 성기웅은 "기존 낭독 공연의 단순한 방식에서 벗어나 연극적 구조 안에서 소설이 만나는 지점을 찾고 싶었다"고 했다. 배우들은 보면대에 책을 놓고 낭독하고, 움직임은 최소화했다. 남녀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서 있거나 같은 곳을 바라보는 식으로 둘의 '관계'를 보여준다. 인물의 움직임과 감정은 때론 사물의 은유로 표현된다. 가령 '그녀가 주저앉아 울었다'는 문장 뒤에 여배우 대신 보면대를 확 주저앉히는 식으로.

성기웅은 "연기가 아니라 활자를 읽어주는 형식이라 감정적으로 몰입하려고 해도 계속 방해를 받는다. 브레히트의 '거리 두기' 같은 효과"라며 "낭독자가 문장을 직접 전달해주고 관객은 부분의 감각에만 의지하기 때문에 집중도가 매우 높을 것"이라고 했다. '나'를 맡은 배우 김종태는 "문장이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라 말하듯이 전달하는 장치를 연구하고 있고, 발음에도 더 신경 쓰게 된다"면서 "대사를 외우지 않아도 되는 건 좋다"고 웃었다.

이번 공연은 젊은 소설가들의 단편소설을 무대 공연으로 끌어오는 독특한 시도. 대학로에서 주목받는 동 세대 젊은 연출가들이 연출을 맡았다. 김연수 소설 외에 김애란의 '칼자국'(추민주 연출), 김미월의 '서울 동굴 가이드'(김한내 연출)가 번갈아가며 공연된다.


▶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30일~9월 10일 산울림 소극장, (02)764-7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