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회 매진돼도 11억원 손해… 그러면 어때? 안중근이 뉴욕 가는데

  • 뉴욕=김경은 기자

입력 : 2011.08.25 01:24

'히어로'로 뮤지컬 본고장 美 무대 2번째 도전… 연출가 윤호진
국내 초연때 번 7억 들고 뉴욕행, 낮엔 돈 꾸러 다니고 밤엔 연습
잘났으면 잘났다고 내세우고 못났으면 배워보자 부닥쳐야지… 토니상 언저리라도 붙이고 싶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한 번 했는데 두 번이라고 못할까. 실패? 혹평? 빚? 그런 건 생각지도 않았다. 안중근 의사가 가는데, 그것도 미국에 진출하는데."

23일 밤(현지시각)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링컨센터 2층 리셉션장. 자신이 제작·연출한 뮤지컬 '히어로'가 성공적으로 뉴욕 무대에 올라간 이날 윤호진(63) 에이콤인터내셔날 대표는 벅찬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상기된 모습이었다. "뿌듯하다. 뉴욕 관객들이 '어메이징!'을 외칠 거라 자신했는데 진짜 그랬다. 그동안 고생한 거 단박에 보상받았다."

이날 저녁 링컨센터 내 데이비드 코크극장에서는 안중근(1879~1910) 의사가 주인공인 창작 뮤지컬 '히어로'가 첫선을 보였다. 한국산(産) 뮤지컬이 뮤지컬의 본고장 미국 무대에 선을 보인 것은 '명성황후'에 이어 두 번째.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맞아 2009년 초연된 '히어로'는 한국 관객에게는 '영웅'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다.

뉴욕 링컨센터 무대에 뮤지컬‘히어로’를 올린 연출가 윤호진 에이콤인터내셔날 대표. 윤씨는 거액의 부채를 안고 추진한 뉴욕 공연에 대해“실패? 혹평? 빚? 그런 건 생각도 안 했다. 안중근 의사가 가는데, 그것도 뉴욕에…”라고 말했다. /김경은 기자
그는 '지는 걸 알고 시작하는 싸움'을 시작했다. 윤호진이 말했다. "뉴욕 공연에 250만달러(약 27억원)가 든다. 전회 좌석이 매진돼도 100만달러(11억원) 손해 본다." 윤호진은 '히어로' 국내 초연에서 흑자 난 7억원을 종자돈 삼아 뉴욕에 왔다. "밤에는 뉴욕 시차에 맞춰 새벽 5시까지 배우들과 연습하고, 낮에는 돈 꾸러 다녔다, 독립운동하는 것처럼."

국내에서 열심히 돈 벌어 해외에 나가 고스란히 까먹는 식이다. 14년 전 뮤지컬 '명성황후'를 뉴욕에 처음 가져올 때도 그랬다. 1997년 8월 '명성황후'가 링컨센터에서 초연됐을 때 관객들은 2주 동안 매일 200~300명씩 줄 서서 기다렸을 만큼 매진 사례를 이뤘다. 하지만 제작비 200만달러(당시 환율로 16억원) 중 절반이 빚으로 남았다. 그래서 그는 "애당초 집을 가져본 적이 없다. 있었으면 죄다 담보로 잡혔을 테니까"하며 껄껄 웃었다. 다행히 '명성황후'는 뉴욕 공연 이후 16년째 영국캐나다 등을 돌며 공연을 계속하고 있다.

굳이 주머니 비워가며 해외에 나가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대뜸 "구석에서 백날 뚜닥거려봐라. 누가 알아주나"라고 쏘아붙였다. "잘났으면 잘났다고 내세우고, 못났으면 어디 좀 배워보자고 부닥쳐야지. 브로드웨이에도 도전해서 게네가 따라 할 수 없는 걸 만들어야 한다. '히어로'에 등장하는 12m 길이 기차 세트를 봐라. 무대 위 2.7m 높이로 만주 벌판을 달리고 하얼빈역에 들어온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역사가 100년이 넘는데, 실제 크기 기차가 나와서 공중에 뜨는 작품은 내가 아는 한 없다."

'명성황후'가 일제에 잔인하게 짓밟힌 조선 왕비의 비애를 다뤘다면 '히어로'는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를 똑같이 영웅으로 설정하고, 당시 그들이 처해 있던 상황과 고민을 들여다본다. 조선 침략의 원흉을 그렇게 그리다니 언뜻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윤 대표는 "일본 편에서 보면, 제3자의 눈으로 보면, 안중근의 독립운동은 테러행위로 보일 수도 있다"며 "나는 안중근을 단순한 테러리스트가 아닌 인간의 본질적인 면을 포착할 줄 아는 묵직한 인물로 그려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려면 안중근과 이토를 같은 시대를 산 영웅으로 설정해야 했다. 두 영웅이 난세의 쳇바퀴 속에서 서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묘사하면서 어떻게 하면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도록 의도한 것이다."

'히어로'는 탄탄한 작품성으로 작년에만 국내 뮤지컬 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한국 근대사의 상흔에 미국 관객이 얼마나 공감할지는 미지수. 다행히 첫날 뉴욕 관객의 반응은 한마디로 열광적이었다. 1~3층 1500석이 가득 찼고, 2시간30분 남짓한 공연 시간 내내 객석은 무대 위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에 감탄사와 웃음, 박수와 환호를 부지런히 보탰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한국 뮤지컬의 두 번째 해외 도전을 응원해줬다.

윤 대표의 지금 가장 큰 소망은 "'히어로'를 토니상 언저리에 붙이는 것"이다. "오늘 개막 공연에 현지 극장 프로듀서와 극장장들이 많이 왔다. 한국 뮤지컬이 놀랄 만한 수준임을 봤을 거다. 그들과 손잡고 '히어로'를 영어 버전으로 만들어 뉴욕에 다시 오는 게 목표다." 단단한 표정의 몽상가, 혁명가가 오랜만에 흥분했다.

☞ 윤호진은

대한민국 뮤지컬계의 대부. 1995년 명성황후 시해 100주기에 맞춰 뮤지컬 ‘명성황후’를 창작·초연했고, 이후 한국 뮤지컬이 본격 성장했다. 뉴욕대 대학원 공연학과를 졸업했고, 현재 단국대 공연영화학부 교수. 2009년 안중근 의사 100주기에 맞춰 신작 뮤지컬 ‘영웅’을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