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장한나 "남자도 결혼도 모두 잊었어요"

  • 여주=김경은 기자

입력 : 2011.08.11 01:41

앱솔루트 클래식 13일부터
그런거 다 생각하면 지휘 못해… 욕심도 많고 싫증 날 겨를도 없어
한국 어린 연주자들 도우며 함께 끝없이 성장하고 싶다

"영화관에 간 게 언제인지 모르겠어요. 쇼핑도 뉴욕 집 근처에서 주로 하지만 옷이나 화장품보다는 식품 매장 가는 걸 더 좋아해요. 특히 노량진 수산시장! 부천 외조부모님 댁에 가기 전엔 꼭 거기 들러 가자미랑 조기, 생굴을 채워요. 생선마다 생김새는 어쩜 그리 다른지 구우면 고소한 맛이 일품이고, 펄떡펄떡 살아있는 느낌도 정말 좋아요."

'천재 소녀' 입에서 노량진 수산시장이 나오니 좀 의아하다. 그러나 그럴 것도 없는 것이 그녀, 올해 우리 나이로 서른이다.

지난 8일 오후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배경으로 잘 알려진 경기도 여주군 마임비전빌리지에서 만난 그는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연습만 하면 땀으로 범벅이 돼서 옷도 물빨래할 수 있는 것만 입어요." 투덜댔지만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장한나는 성남아트센터가 '음악이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모토로 2009년 시작한 '장한나의 앱솔루트 클래식'을 통해 본격 지휘자로 나섰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앱솔루트 클래식은 성남아트센터가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30세 미만 연주자 80여명을 그가 훈련해 지휘하고, 일반인도 클래식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해설하는 관현악 축제다.

열한 살 어린 나이에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국제 콩쿠르에서 대상을 타며 '신동(神童)'이란 수식어를 길어올렸던 그가 지휘의 길을 걷는 이유는 "욕심이 많아서"다. "어느 정도로 욕심이 많으냐면 독일 밤베르크에서 아빠 선물로 수제 초콜릿 한 박스를 사왔어요. 근데 빨간 고추를 넣은 것, 겨자와 베이컨을 섞은 것, 후추와 바닷소금을 뿌린 것 등 종류가 다양해서 맛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초콜릿 50조각을 반쪽씩 베어 문 채 나머지를 남겨뒀지요. 아빠가 오셔서 누가 그랬느냐며 하하하!" 장한나는 "베토벤은 첼로 협주곡을 하나도 안 써서 첼로만 하면 그를 깊이 알 수 없지만 지휘를 하면 그가 쓴 9개의 위대한 교향곡을 공부할 수 있어 음악적 지평선을 무궁무진 넓힐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첫 연습을 끝내고 호숫가에 선 장한나는“단원 80여명의 소리가 지휘봉 끝에 본드를 바른 것처럼 딱 달라붙는 순간을 위해 매일 7시간씩 맹연습 중”이라 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또 하나의 장점은 "싫증 날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장한나는 2009년 9월 예능 프로그램인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지휘를 하려면 300곡을 외워야 한다"고 토로했었다. 그는 "아니다, 해보니 300곡은 기본이고, 거기에 덧붙는 곡이 끝이 없다"며 "유럽 극장에서 내년에 오페라를 하자는 제의도 받았는데, 오페라는 2시간 동안 아리아를 포함해 수십 곡을 다뤄야 하는 대작이라 그거 외울 생각 하면 지금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는 "같은 악보에 적힌 포르테(f·음악기호 '세게 연주하라')라도 어떤 지휘자는 3㎝ 크게 하고 어떤 지휘자는 5㎝ 크게 하는데, 청중은 어느 땐 잠들고 어떨 땐 열광한다"며 "청중의 마음을 건드려서 그들이 열광하는 지휘자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러려면 시간 날 때마다 CD를 듣고, 지휘자들의 DVD를 봐야 한다. 그러니 그의 실생활은 무채색에 가까울 정도로 단순하다

"남들 같으면 남자친구 사귀고 결혼할 나이지요. 하지만 일단 사귀는 상대가 없고, 연주회 때마다 드레스를 입어서 웨딩드레스에 대한 환상도 없고, 늘 연주여행 다녀서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어요. 그리고 그거 다 생각하면 지휘 못해요. 알지만 잊어버려야 하지요. 일부러 생각 안 하려고 스스로 강요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장한나는 "대부분의 지휘자는 40~50대 돼야 비로소 꽃을 피우니까 서른 살 나는 아직 한참 어리다"고 했다. "피터팬의 네버랜드처럼 저는 네버뮤직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로린 마젤과 미샤 마이스키가 어린 제게 끼친 영향력이 어마어마했듯 저도 한국의 어린 연주자들을 도우며 끊임없이 발전하고 성장하는 음악 세계를 펼칠 거예요."

13일부터 28일까지 장한나는 성남아트센터 등에서 파야의 '삼각모자 모음곡 1·2번'과 로드리고의 '아랑훼즈 협주곡', 거슈인의 '파리의 미국인',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 등을 들려준다. 기타리스트 장대건,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협연자로 나선다.

▶장한나의 앱솔루트 클래식 III=13일 오후 7시30분 중앙공원 야외공연장, 20일 오후 5시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28일 오후 5시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031)783-8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