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8.03 09:50
서울 하늘에 울려 퍼지는 자유의 송가

다니엘 바렌보임과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의 방한이 국내 상황에 대한 어떠한 촉발 요건을 지니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바렌보임의 언급대로 무지에 대한 반향이 이들의 존재 조건이라면 서로에 대한 앎과 이해는 필연적으로 평화로 가는 첫 번째 관문일지도 모른다.
19세기 초 스페인 전쟁에 참가했던 한 독일 병사에 의해 입수된 '코란'은 괴테를 자극해 '서동시집West-Eastern Divan'이라는 환상적인 동방 문학을 일구어냈다. 이와 같은 이방 세계에 대한 문학 작품은 서양인들의 편향된 세계관에 적절한 평형추를 유지하게 했다. 이후 민족적인 대립이나 동서양의 범세계 혹은 범지역적인 문제에 있어서 괴테의 '서동시집'은 평화와 통합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물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1999년은 괴테의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기도 하면서 바이마르라는 도시는 괴테가 생애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가장 상징적인 도시로서 의미가 있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해묵은 갈등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팔레스타인 출신의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는 바이마르에서 이러한 범통합적인 상징물에 가장 즉물적인 성과물을 대입했는데 그러한 결과물이 바로 동명의 오케스트라 웨스트 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다.
평화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 대표적인 음악가로서 파블로 카잘스와 로스트로포비치를 뽑을 수 있다. 음악가가 가진 평화적인 기능에 주목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해나간 동적인 운동가들이었다. 조지 오웰처럼 직접적으로 총을 잡진 않았지만 자신만의 정치색을 분명히 하기도 했고 무너진 장벽 앞에서 활을 켰다. 예술과 정치의 미묘한 함수 논리를 알고 있었던 이들이다.
하지만 불과 6년 전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대립이 정점에 올랐던 지난 2005년, 음악의 실체는 환영에 불과했다. 폭탄이 빗발치는 레바논에서 평화와 통합을 상징하는 두 나라의 젊은이들과 바렌보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다만 음악을 비통하게 연주하는 길뿐이었으리라. 이러한 무기력함은 이들의 존립에 대한 회의로 발전할 소지가 있다.
“'디반' 프로젝트는 연주를 잘하든 못하든 이 오케스트라가 결코 평화를 불러오지는 않을 겁니다. 디반은 다만 무지(無知)에 대한 반발입니다.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고 상대방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설사 나와 같지 않다 하더라도 그들을 이해할 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입니다. 디반에 속해 있는 아랍계 단원들이 이스라엘 사상으로 전향하게 하려는 것도 이스라엘 단원들에게 아랍인들의 생각을 강요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양측이 최후의 선택으로 창과 칼에 의존하지 않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기를 원할 뿐입니다.”
아바도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숄티가 창단한 월드 피스 오케스트라, 정명훈의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같은 비상설 오케스트라는 모두 거장들의 음악적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하는 지극히 음악적인 욕구에 대한 반향이다. 기성 악단들이 그들만의 전통 속에서 새로움을 조화시키고 있다면 새로운 악단들은 완전히 새롭게 구축된 구조 내에서 그들과 지휘자의 온전한 음악적 이상향에 대한 구현을 기대하는 것이다. 특히 디반 오케스트라는 음악적 이상향과 가장 첨예한 정치적 상황이 가장 잘 조화된 예술과 정치의 새로운 창조물인 것이다.
어찌되었든 존재 그 자체가 뜨거운 이들이 드디어 한국 땅을 밟는다. 중동 지역을 제외하고 세계의 시각에서 가장 큰 전쟁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일촉즉발의 대한민국, 그것도 최북단의 임진각에서 그들만의 평화 시위가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연주회를 통해 그러한 진면목을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연주회의 대미는 광복절에 열리는 임진각 야외 특설무대다. 인류 화해와 통합에 대한 통렬한 드라마인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야외무대에서 야심 차게 올리기 때문이다. 군사분계선MDL 북단에서도 가청 가능한 지역이다.
이들의 방한이 국내 상황에 대한 어떠한 촉발 요건을 지니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바렌보임의 언급대로 무지에 대한 반향이 이들의 존재 조건이라면 서로에 대한 앎과 이해는 필연적으로 평화로 가는 첫 번째 관문일지도 모른다. 중동의 뜨거운 피가 우리나라의 평화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바렌보임과 디반을 볼 수 있다는 것, 모두 축복에 다름 아니다.
information
일시 : 8월 10・11・12・14일 20시, 15일 19시
장소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임진각 평화누리 야외공연장(15일)
문의 : 1577-5266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