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II] [경기도 이사람] "노인·장애인들에게서 열정을 배웁니다"

  • 양희동 기자

입력 : 2011.07.27 23:26

소외계층에 연극 가르치는 극단 '성' 대표 김성열씨
30년간 수원에서 무대 활동, 나혜석·정조 등 지역인물 극화… 서민도 공연 즐기도록 거품 빼

"하나 둘 셋 넷. 음악 바뀌고 '쉬' 바람소리 났다."

지난 25일 오후 7시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청소년문화센터 댄스 연습실. 40㎡의 좁은 공간에서 장애인 극단 '난다' 단원 7명이 안무 담당 이은미(35)씨의 지시에 맞춰 다음달 말 오산 문화예술회관과 수원 장안구민회관 무대에 올릴 연극 연습에 한창이었다.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청소년문화센터 댄스연습실에서 김성열(왼쪽에서 두 번째)씨가 장애인 극단 ‘난다’의 연습을 지켜보고 있다. /양희동 기자
연습실 한쪽 끝에는 예술감독을 맡은 극단 '성(城)' 대표 김성열(58)씨가 이들의 연습 장면을 세심히 지켜보며 고칠 점들을 지적했다. 김씨는 "장애인들을 돕는 게 아니다. 함께 땀흘리며 작품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 강원도 속초 출신인 그는 1983년 극단 '성'을 창단해 1980년대 수원 북문의 소극장에서 노동운동과 관련된 마당극을 했다. 1990년대에는 '햄릿', '맥베스', '고도를 기다리며' 등 정통 연극을 무대에 올려 이름을 알렸고, 1996년 시작된 수원화성(華城) 국제연극제를 기획하기도 했다. 연극 치료를 배우기 시작한 2003년부터는 수원·화성 등에서 노인과 장애인, 다문화 가정 등 소외계층을 연극 무대로 이끌고 있다.

소외계층에 연극을 가르치는 일은 우연히 시작됐다. 8년 전 제자의 추천으로 호기심에 숙명여대에서 연극 치료를 배우면서 노인 복지관으로 실습을 나간 것이다.

김 대표는 그곳에서 치매와 외로움으로 고통받는 노인들에게 연극을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실버연극단을 만들기 위해 수원지역 노인회와 경로당 등을 수없이 찾아다녔지만 반응은 차가웠다. 수입도 생기지 않는 일에 참여하겠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노력 끝에 2007년 화성지역 노인들을 모아 실버극단을 만들었고, 현재까지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 실버극단 공연을 마쳤는데 한 노인분이 공연 직후 바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을 했다"며 "어떻게든 자신이 맡은 역을 무사히 끝내고 싶은 마음에 아픈 것도 참고 무대에 올랐던 그 분에게서 오히려 내가 연극에 대한 열정을 배웠다"고 했다.

지난 26일 오전 김성열씨가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 ‘수원시민소극장’에서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이야기하고 있다. /양희동 기자

노인에 대한 그의 관심은 장애인으로 이어졌다. 수원 새움장애인야학 교장 신승우(39)씨가 차 사고로 뇌병변(腦病變) 장애인이 된 이후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에 감동을 받은 그는 지난해 신씨를 중심으로 정신지체 장애인 극단 '난다'를 결성했다.

그는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려면 오랜 기다림이 필요한 장애인들에게 연극을 가르치면서 신경질적이던 내 성격도 바뀌었다"며 "연극을 통해 장애인들만 치유된 것이 아니라 나도 치유됐다"고 했다. 지난 달부터는 수원외국인복지센터에서 외국인 이주 여성들에게도 연극을 가르치고 있다. 중국·베트남·우즈베키스탄 등이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온 여성들은 연극을 통해 한국어 실력도 크게 향상됐다.

수원시 팔달구 화성행궁 인근의 예술인 작업공간 '행궁동 레지던시' 지하 1층에 자리한 '수원시민소극장'은 김씨가 지난 4월 27일 문을 열고 활동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곳이다. 소극장을 만들기 위해 김씨는 폐허처럼 방치됐던 지하공간에서 1t 청소차 9대 분량의 쓰레기를 직접 치웠다. 또 염태영 수원시장을 비롯한 시민 82명으로부터 의자도 1개씩 기증받고, 단원들과 함께 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조명·음향장비를 설치해 소극장을 완성했다.

개관과 함께 극단 '성'은 수원을 대표하는 인물인 나혜석(1896~1948)을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 '선각자 나혜석'을 시민들에게 선보였다. 당시 210㎡·105석 규모의 소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공연에 열광했다.

다음달 5일부터는 같은 무대에서 뮤지컬 '어린이 정조대왕'을 선보일 계획이다. 수원을 상징하는 정조대왕의 효(孝)를 아이들에게 일깨우기 위해 준비한 공연이다. '어린이 정조대왕'을 마치면 그는 홍난파(1898~1941)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을 기획할 예정이다. 화성이 고향인 홍난파의 극적인 삶을 친일 행적까지 가감없이 보여줄 계획이다.

그는 "서민들이 문화의 전당 같은 곳에서 공연을 보려면 1명당 최소 3만원은 줘야 하는데 가족이 다 같이 보려면 10만원이 넘는다"며 "꼭 비싸야 좋은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 공연의 '거품'을 빼고 서민들도 부담없이 무대를 즐기게 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