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들은 왜 노동조합가를 부르나

  • 박돈규 기자

입력 : 2011.07.27 03:04 | 수정 : 2011.07.27 05:39

스타급 몇명 빼곤 낮엔 주유소·편의점 알바 밤엔 대리운전
평균 年收 1500만원 안돼… 공연계 첫 배우 노조 설립 나서

"뮤지컬 경력 7년 차 앙상블(코러스) 배우다. 회당 출연료가 5만~7만원이다. 연습 기간에는 수입이 없다. 나와 동료 대부분은 '흥행이 안 됐다'는 이유로 출연료를 늦게 받거나 아예 못 받은 경험을 갖고 있다."

"낮에 주유소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서빙을 한다. 밤에 대리운전하는 배우도 있다. 한 해 100여편의 뮤지컬이 공연되고 출연료는 1·2·3차로 나눠 받는데 1차만 받고 끝나는 경우도 많다 배우들의 처우는 쥐꼬리다…"

국내 공연계에서 뮤지컬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출 기준 50~60%(매출액 연간 2500억원), 특히 20~3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뮤지컬 팬층이 두텁게 쌓이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 그늘의 그림자는 길다. 무명 배우들은 스타의 꿈을 꾸면서 하루하루 겨우 견디는 것이다.

이제 뮤지컬 배우들이 뭉친다. 뮤지컬 '엄마를 부탁해' '남한산성' 등에 출연한 배우 이계창(41)은 "배우들의 복지와 권익 보호가 시급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면서 "한국뮤지컬협회(이사장 송승환) 안에 배우 분과를 만들고 8월 22일 충무아트홀에서 첫 총회를 연다"고 밝혔다. 국내 공연계에서는 처음으로 사실상 '배우 노조'가 출범하는 것이다.

이계창이 배우 분과 추진위원장을, 서범석·이석준·이윤표·이정열·정영주가 추진위원을 맡았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그늘에서 최저 임금으로 생활고를 겪는 뮤지컬 배우들이 권익단체를 결성하려고 움직이고 있다. 사진은 뮤지컬 배우를 뽑는 오디션 장면. /이태경 기자
제작자와 배우는 철저한 '갑을(甲乙) 관계'. 이계창은 "계약서를 지키지 않는 관행이 만연해도 배우는 공개적으로 문제 삼기 어렵다. 하소연할 곳도 없다"고 했다.

최근 배우 분과에서 20~40대 남녀 배우 3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는 참담하다.

공연 외에 편의점·주유소·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도 하지만 평균 수입은 1500만원이 안 됐다. 연간 출연작은 평균 3편. 겪은 불이익으로는 임금 체불, 저임금 순이 많았다.

지난해 8월에는 뮤지컬 '코러스라인' 재무이사가 미지급 출연료 225만원을 달라는 주연배우를 망치로 폭행하는 장면이 CCTV에 녹화돼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

지혜원 공연칼럼니스트는 "브로드웨이의 배우 조합(유니언)은 규모가 크고 각각이 갑을은 아니어도 고용에 대한 표준계약을 한다. 자본주의에서 상한선은 만들기 어렵지만 하한선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이번에 출범하는 배우 분과는 미국 브로드웨이의 배우 조합과는 성격이 다르다.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배우들의 권익을 지키려는 맥락은 같지만 결과적으로 국내 뮤지컬 시장 자체를 지키는 공공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이계창은 "목소리를 모아 출연료 상하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개런티는 회당 1000만원 이상부터 최저 3만원까지 다양하다. 잘못된 제작 관행을 이어가는 제작사에 대해서는 협회 차원에서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대관 등에 제재를 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