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7.25 00:28
세시봉과 친구들 LA 공연
중년층 "타향살이에 큰 위로… 수십년 전 추억이 새록새록", 20대 유학생 "엄마 생각 나"
23일(현지 시각) 저녁 미국 LA의 초특급 공연장 슈라인 오디토리엄(Shrine Auditorium). 한국에서 통기타 열풍을 몰고 다니는 세시봉과 친구들의 선율이 6500여 교민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공연 중반부 윤형주가 특유의 미성(美聲)으로 '긴 머리 소녀'를 부르는 순간 중장년 관객들의 눈엔 이슬이 맺혔다. 무대 뒤 스크린에 교복을 입은 채 맑게 웃고 있는 1970년대 여고생들의 흑백 사진이 청명한 노래와 어우러지면서 수십년간 꼭꼭 감춰뒀던 이들의 향수(鄕愁)를 자극했던 것이다. 관객은 누구의 선창도 없었지만 일제히, 하지만 차분하게 노래를 따라부르며 과거를 떠올렸다. 윤영희(54)씨는 "미국에 온 지 33년이 되는데 오랜 타향살이에 커다란 위로가 되는 공연"이라며 "세시봉의 노래를 통해 고향의 정겨운 감성을 만난다"고 했다.
공연 시작 2시간여 전부터 몰려든 관객은 40~60대가 주를 이룬 가운데 20~30대도 눈에 띄었다. 4년째 유학 중인 이재림(28)씨는 "엄마 세대가 좋아했던 노래들이라 공연장에서 자꾸 엄마 생각이 났다"며 "이런 실력 있는 가수들의 음악을 미국에서 들을 수 있으니 감동적"이라고 했다.
이날 공연은 한국에서 펼쳐진 '세시봉 친구들'과 비슷한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만, 송창식이 개인 사정으로 빠져 윤형주·송창식의 '트윈폴리오' 시절 화음을 들을 수 없는 게 아쉬웠다. 조영남이 송창식 대신 참여해 공연 후반부에 '딜라일라', '화개장터' 등을 열창해 객석을 달궜다. 관객은 '울리 불리(Wolly Bully)' '서핀 유에스에이(Surfin' USA)' 등 로큰롤 메들리에도 뜨겁게 반응했다.
3시간여에 걸친 공연은 윤형주, 김세환, 조영남이 함께 부른 '그대 그리고 나'와 '그건 너'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마지막 인사가 끝난 뒤에도 객석에서 일어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간절하게 기다려왔던 공연의 여운이 가시기엔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30년째 이민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봉우(62)씨는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며 "이게 바로 한국인의 정서 아니겠느냐"고 했다. 일부 팬들은 공연이 끝난 뒤 가수들을 찾아와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던 LP에 사인을 받기도 했다.
LA에서 80마일 떨어진 핀랜에서 온 서영민(53)씨는 장애인. "눈도 안 보이고 중풍 때문에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신세지만 이 공연은 절대 놓칠 수 없었다"고 했다. 한국인 부인과 함께 온 미국인 도널드 화이트(White·55)씨는 "세시봉 노래는 사람 마음에 간절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했다. 윤형주씨는 "25년 만에 LA에서 공연을 했는데 교민의 애환과 외로움을 다시 한번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