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심청 뷰티풀! 미국도 눈이 번쩍

  • 샌프란시스코=박돈규 기자

입력 : 2011.07.24 23:25

샌프란시스코 워 메모리얼 공연 큰 호응… 커튼콜 예닐곱 번에 기립박수 쏟아져

여든 살 된 극장도 놀랐다. 오프 시즌(휴가철)에 태평양을 건너온 한국의 발레 '심청'(The Blindman's Daughter)<사진> 때문이다. 22일 밤(한국시각 2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워 메모리얼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 발레 '심청'은 예닐곱 번의 커튼콜과 기립박수를 받았다.

"뷰티풀!" 어린아이도 노파도 감상을 묻자 이 형용사부터 꺼냈다. 딸·어머니와 함께 온 관객 크리스티나 스토빙(Stobing)씨는 "용궁 장면이 인상적이었고 춤·음악·의상·무대가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LA타임스에 기고하는 무용 평론가 루이스 시갈(Segal)씨는 "연기력이 더 풍성해졌다. 작품에 대한 무용수들의 강력한 믿음이 전해졌다"고 했다.

UBC 제공

1932년 지어진 워 메모리얼 오페라하우스(3000석)는 샌프란시스코 발레단과 오페라단이 상주하는 극장이다. 리처드 기어와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 '프리티 우먼'에도 등장한다. 창작 발레로는 한국을 대표하는 유니버설발레단(UBC)의 '심청'은 현지 기획사의 초청으로 22일과 24일 이 웅장한 극장에서 공연됐다. 올해 월드투어 중인 이 작품은 대만·싱가포르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왔고 29~30일에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관객을 만난다.

'孝(효)'와 분홍빛 연꽃이 새겨진 무대막이 오르면 초가 풍경이 펼쳐진다. 심청(황혜민)이 눈먼 아버지에게 세상을 보여주려고 공양미 300석에 몸을 파는 이야기는 고전 그대로다.

안무(에드리안 델러스)는 남녀의 역할 분담, 균형감이 돋보였다. 1막에서 심청의 투신(投身) 직전 배 위에서 펼쳐지는 남성들의 군무(群舞)는 힘차고 날렵한 직선이었고, 2막의 바닷속 용궁 장면은 화려하고 부드러운 여성 군무의 릴레이였다. 궁궐과 소나무숲이 배경인 3막은 한 폭의 동양화 같은 무대 미술로 관객을 집중시켰다. 노를 이용한 춤은 창의성과 구성력이 빛났고, 황혜민·엄재용(왕)의 '문라이트 파드되'(달빛 2인무)는 둘의 오랜 호흡만큼이나 깊이와 여유가 묻어났다.

하지만 이날 '심청'은 몇몇 대목에서 거칠었다. 1막에서 폭풍우가 점점 거세지는 동안 깃발의 움직임에 거의 변화가 없었고, 촬영해 삽입한 수중 장면도 원근감 없이 지루해 효과가 반감됐다.

심청은 기교보다 표현력이 중요한 배역이다. 연기와 춤의 경계가 불분명한 대목이 많아서다. 발레리나 황혜민은 서정적이고 성숙한 연기력을 보여줬다. UBC 군무진의 앙상블도 단단했다. 심봉사가 눈을 뜨는 마지막 장면은 믿기지 않지만 믿고 싶어지는 엔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