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와 최고로 불리는 두 무용수… "밑바닥 갑니다"

  • 박돈규 기자

입력 : 2011.07.20 23:54

파리오페라발레단 가는 박세은
러시아 마린스키 진출 김기민
국내외 무대 주역 도맡다 이젠 주역 빛내는 배경역할
"한국인의 저력 보여줄래요"

발레 포즈를 취한 박세은·김기민. 세계 최정상의 발레단에 진출하는 이들은“콩쿠르를 통해 꿈을 향해 나아갔지만 진짜 도전은 이제부터”라고 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미국 잭슨, 스위스 로잔, 러시아 모스크바, 불가리아 바르나…. 출전하는 콩쿠르마다 정상을 접수해온 발레리나 박세은(22)과 발레리노 김기민(19)이 다시 짐을 싼다. 이번엔 콩쿠르가 아니다. 이들은 올여름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세계 최정상의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박세은)과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김기민)에 각각 진출한다. 입단도 '뉴스 메이커'다웠다. 박세은은 파리오페라발레단에 '한국인 여자 최초'로, 김기민은 마린스키발레단에 '한국인 남자 최초'로 이름을 올렸다.

"누나, 난 벌써 러시아 이름 생겼어. '기민스키'라고…."(김기민)

"나도 인사를 '봉주르'로 받는다."(박세은)

썰렁했는지 둘이 마주 보고 웃었다. 박세은은 24일부터 열리는 제8회 서울국제무용콩쿠르(31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개막 공연을 한다. 프랑스로 날아가기 전 고별 무대다. 당초 김기민과 '돈키호테' 그랑 파드되(남녀 솔로와 2인무의 조합)를 출 예정이었지만, 김기민의 부상 치료 때문에 파트너가 김기완으로 바뀌었다. 김기민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최고의 자리에서 누나와 파드되를 추고 싶다"고 했다.

"콩쿠르는 경험이자 징검다리"

서울국제무용콩쿠르는 박세은에게 더 특별하다. 이 '콩쿠르의 여왕'이 입상에 실패한 대회(2006년)였기 때문이다. 김기민은 2008년 이 콩쿠르에서 금상을 차지했다.

박세은="그땐 너무 긴장했어요. 콩쿠르는 춤의 50%도 못 보여줘요. 좋은 발레단에 들어가기 위한 징검다리일 뿐입니다."

김기민="운이 따라야 해요. 결과가 1등이면 기쁘지만 내가 최고라는 느낌은 없어요. 어릴 적 꿈을 이룬 이번 마린스키 입단이 훨씬 소름 돋는 일이었습니다."

="파리오페라발레단 오디션을 치르면서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간절히 바란다면 그만큼 노력할 테고 용기도 생길 겁니다."

="콩쿠르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기회지요."

="떨어지면 실망스럽지만 좌절은 안 해요. 길은 많으니 얼른 털고 일어나야지요."

="콩쿠르 나가는 무용수에게 '1등 해라'는 저주예요. 진짜 격려는 '좋은 경험 해라'입니다."

정상에서 밑바닥으로

박세은과 김기민은 코르 드 발레(군무진)로 입단한다. 이름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주·조역 무용수의 배경이 되는 역할이다. 맨 아래 등급이지만 '발레단의 등뼈'라 불릴 만큼 중요하다. '백조의 호수' '라 바야데르' 등에서 주역을 도맡았던 박세은·김기민으로서는 급격한 '신분 추락'을 견뎌야 한다.

="3~4년 바닥에서 살 생각이지만 솔직히 준비가 안 돼 있어요. 자제하고 억눌러야겠지요."

="예원학교 입학했을 때처럼 막막해요. '처음부터 다시'라는 느낌만 들고."

="동양인에게 배타적인 단체인데 무시당하면 어쩌나 걱정도 돼요."

="마린스키 연습실에 들어갔는데 다들 잘생기고 노란 머리야. 나만 까매. 바라보는 시선이 '넌 어느 별에서 왔니?' 하는 것 같았어요."

="개성과 색깔을 지우면서 코르 드 발레로 살아남겠습니다."

="나도 다짐했어. 까만 피부의 파워를 보여주마!"(웃음)


서울국제무용콩쿠르


올해 8회째로 15개국 217명이 본선에 올라 있다. 발레·현대무용·민족무용 세 장르에서 솜씨를 겨룬다. 남자의 경우 발레와 현대무용 1~2위 입상자에게 병역 특례가 주어진다. 그랑프리 1만달러를 포함해 상금 7만3000달러가 걸려 있다. 영국 국립발레단의 웨인 이글링 예술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는다. 관객도 춤을 감상하면서 직접 채점해보는 재미가 있다. 세부 일정은 www.sicf.or.kr 참조. (02)588-75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