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7.20 23:52
[심층리뷰] 정명훈·서울시향 도이치그라모폰 음반… 드뷔시, 라벨
세계 최대 메이저 음반회사인 도이치그라모폰(DG)에서 정명훈(58)이 지휘하고 서울시향이 연주하는 '드뷔시, 라벨' 음반이 지난 19일 정식 발매됐다. 지난 4월 7일 아시아 오케스트라로서는 최초로 서울시향이 유니버설뮤직그룹인터내셔널(UMGI) 산하 DG와 계약한 이후 처음 선보이는 앨범이다. 정명훈의 대표 레퍼토리이자 지난해 유럽투어에서 호평받았던 드뷔시(1862~1918)의 교향시 '바다', 라벨(1875~1937)의 '어미거위'와 왈츠를 뜻하는 '라 발스' 등 프랑스 음악으로 구성됐다.
자신 있고 잘하는 곡에 집중하다 보니 전체 길이는 54분11초로 짧은 편. 인터내셔널판 클래식 음반 사상 최초로 영어·독어·불어와 한글이 나란히 적혔다.
서울시향은 앞으로 5년간 매년 2장의 앨범을 DG에서 발매한다. 말러 교향곡 1번과 2번의 녹음을 끝내고 마스터링 작업 중에 있으며, 올해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진은숙(50)의 생황 협주곡 '슈', 말러 교향곡 9번을 녹음할 계획이다.
한 명의 평론가와 본지 기자가 갓 출시된 음반을 듣고 양날의 칼을 들이댔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지휘자와 교향악단, 음반사의 만남인 만큼 수준은 평균을 뛰어넘는다. 칭찬에 비해 비판이 어려웠던 이유다. 그럼에도 세월의 더께를 입으며 명반(名盤), 명오케스트라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쉬운 점을 더해봤다. 판단은 듣는 이의 몫이다.
[좋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음악 자체가 된 듯 신들린 연주
팀파니의 첫 음이 울린다. 강약기호는 피아니시시모(ppp). ‘여리게 연주하라’는 뜻의 피아노(p)가 3개다. 하지만 팀파니의 고요한 울림은 결코 여리지 않다. 새벽 바다의 일렁임을 담은 작은 소리에선 대양(大洋)의 에너지가 전해진다. 정명훈과 서울시향은 리듬의 활력과 화려한 음색을 강조한 긴장감 넘치는 연주로 드뷔시의 ‘바다’를 새롭게 해석해냈다. 목관 악기의 관능적 연주와 현악기의 풍부한 음색이 어우러져 바다의 거친 물살이 실감 나는 음향으로 표현됐다.
연주는 섬세한 수채화라기보다는 거친 질감의 유화에 가깝다. 이런 개성은 특히 ‘바다’의 제3곡 ‘바람과 바다의 대화’에서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도입부를 장식하는 첼로와 더블베이스의 짧은 음형에서부터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의 힘이 느껴진다. 성난 파도를 닮은 현악기의 거친 리듬, 약음기를 낀 트럼펫의 강렬한 솔로가 인상적이다. 물론 제2곡 ‘파도의 유희’ 종결부에서 글로켄슈필과 하프가 섬세한 연주로 물방울이 튀듯 신비로운 소리를 만들어낸 훌륭함도 빼놓을 수 없다.
라벨의 ‘어미 거위’에선 서울시향의 충실한 톤이 동화 내용과 어울리지 않을 때가 있다. 제2곡 ‘엄지동자’를 여는 현악기의 풍요로운 소리를 들으며 손가락만 한 엄지동자의 가벼운 발걸음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제3곡 ‘레드로네트, 도자기 인형의 여왕’에서 돋보이는 다채로운 음색과 제5곡 ‘요정의 정원’ 도입부의 감미로운 현악 앙상블은 우리를 환상적인 동화의 세계로 이끈다.
라벨의 ‘라 발스’에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왈츠 그 자체가 된 듯 신들린 연주를 들려준다. 어쩔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강요당하듯 광란의 왈츠를 춘다. 절정에 달하는 순간 정명훈은 오히려 템포를 한발 늦춰 극적인 긴장감을 연출한다. 순간 강하게 울려 퍼지는 팀파니의 타격은 온몸을 관통하는 전기 충격을 방불케 한다. /최은규·음악 칼럼니스트
자신 있고 잘하는 곡에 집중하다 보니 전체 길이는 54분11초로 짧은 편. 인터내셔널판 클래식 음반 사상 최초로 영어·독어·불어와 한글이 나란히 적혔다.
서울시향은 앞으로 5년간 매년 2장의 앨범을 DG에서 발매한다. 말러 교향곡 1번과 2번의 녹음을 끝내고 마스터링 작업 중에 있으며, 올해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진은숙(50)의 생황 협주곡 '슈', 말러 교향곡 9번을 녹음할 계획이다.
한 명의 평론가와 본지 기자가 갓 출시된 음반을 듣고 양날의 칼을 들이댔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지휘자와 교향악단, 음반사의 만남인 만큼 수준은 평균을 뛰어넘는다. 칭찬에 비해 비판이 어려웠던 이유다. 그럼에도 세월의 더께를 입으며 명반(名盤), 명오케스트라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쉬운 점을 더해봤다. 판단은 듣는 이의 몫이다.
[좋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음악 자체가 된 듯 신들린 연주
팀파니의 첫 음이 울린다. 강약기호는 피아니시시모(ppp). ‘여리게 연주하라’는 뜻의 피아노(p)가 3개다. 하지만 팀파니의 고요한 울림은 결코 여리지 않다. 새벽 바다의 일렁임을 담은 작은 소리에선 대양(大洋)의 에너지가 전해진다. 정명훈과 서울시향은 리듬의 활력과 화려한 음색을 강조한 긴장감 넘치는 연주로 드뷔시의 ‘바다’를 새롭게 해석해냈다. 목관 악기의 관능적 연주와 현악기의 풍부한 음색이 어우러져 바다의 거친 물살이 실감 나는 음향으로 표현됐다.
연주는 섬세한 수채화라기보다는 거친 질감의 유화에 가깝다. 이런 개성은 특히 ‘바다’의 제3곡 ‘바람과 바다의 대화’에서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도입부를 장식하는 첼로와 더블베이스의 짧은 음형에서부터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의 힘이 느껴진다. 성난 파도를 닮은 현악기의 거친 리듬, 약음기를 낀 트럼펫의 강렬한 솔로가 인상적이다. 물론 제2곡 ‘파도의 유희’ 종결부에서 글로켄슈필과 하프가 섬세한 연주로 물방울이 튀듯 신비로운 소리를 만들어낸 훌륭함도 빼놓을 수 없다.
라벨의 ‘어미 거위’에선 서울시향의 충실한 톤이 동화 내용과 어울리지 않을 때가 있다. 제2곡 ‘엄지동자’를 여는 현악기의 풍요로운 소리를 들으며 손가락만 한 엄지동자의 가벼운 발걸음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제3곡 ‘레드로네트, 도자기 인형의 여왕’에서 돋보이는 다채로운 음색과 제5곡 ‘요정의 정원’ 도입부의 감미로운 현악 앙상블은 우리를 환상적인 동화의 세계로 이끈다.
라벨의 ‘라 발스’에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왈츠 그 자체가 된 듯 신들린 연주를 들려준다. 어쩔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강요당하듯 광란의 왈츠를 춘다. 절정에 달하는 순간 정명훈은 오히려 템포를 한발 늦춰 극적인 긴장감을 연출한다. 순간 강하게 울려 퍼지는 팀파니의 타격은 온몸을 관통하는 전기 충격을 방불케 한다. /최은규·음악 칼럼니스트
[글쎄] 기량 발휘보단 악보에 집중… 명반과 비교하기엔 부족
에르네스트 앙세르메(DECCA), 장 마르티농(EMI) 등 프랑스 색채가 농후한 지휘자들의 명반과 비교할 때 정명훈과 서울시향이 연주하는 드뷔시의 ‘바다’는 무채색 수묵화에 가깝다.
하프를 크게 운용하면서 목관 악기·금관 악기를 통해 시시각각 바뀌는 바다의 색채를 자유분방하게 뽐내는 프랑스 음악 특유의 감성이 여기선 잘 잡히지 않는다. 초행이라 실수하지 않으려는 탓인지 색채감의 발산을 자제하고, 악보에 정밀하게 수렴해 들어간다.
조심성은 ‘바다’의 제1곡 ‘새벽부터 정오까지 바다’에서부터 드러난다. 여명이 걷히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의 세부 단계를 작곡가는 다양한 템포로 구비해뒀다. 그런데 제1곡 말미에서 세 번의 악센트가 이글거리는 한낮의 태양이라 하기에는 다소 약한 느낌이다. 템포가 너무 늦어 해가 쉬이 뜨지 않고, 수면 위 눈부신 태양빛도 기교를 억제해 잘 보이지 않는다.
라벨의 ‘어미거위’는 사방에서 튀어오르는 아름다운 음향이 백미다. 주 테마를 담당한 관악기들이 까불고 익살스러워져야 하는 이유지만 재량을 마음껏 드러내지 못한다.
이 점은 ‘라 발스’에서도 두드러진다. 리듬감은 듣고 있으면 들썩들썩 몸을 맡기고 싶을 만큼 제대로 표현했다. 그러나 늘어질 땐 늘어지고 조일 땐 확 조이면서 리듬을 가지고 노는 느낌을 주는 명반과 달리 진폭이 낮아 수수하다.
현악기의 두께와 결은 곱고 풍성하다. 내지르는 힘이 약하고 무언가에 억눌린 듯 제 기량을 맘껏 드러내지 못하는 관악기가 아쉽다. 서울시향 관악기 파트가 원래 가지고 있던 한계를 드러낸 건지도 모른다.
정명훈은 프랑스 특유의 몽롱하면서 나른하고 다채로운 색감을 본능적으로 파악해 연주에 녹여냈다. 이 점에서 그는 타고났지만 이 음반을 명반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기엔 부족하다. /김경은 기자
에르네스트 앙세르메(DECCA), 장 마르티농(EMI) 등 프랑스 색채가 농후한 지휘자들의 명반과 비교할 때 정명훈과 서울시향이 연주하는 드뷔시의 ‘바다’는 무채색 수묵화에 가깝다.
하프를 크게 운용하면서 목관 악기·금관 악기를 통해 시시각각 바뀌는 바다의 색채를 자유분방하게 뽐내는 프랑스 음악 특유의 감성이 여기선 잘 잡히지 않는다. 초행이라 실수하지 않으려는 탓인지 색채감의 발산을 자제하고, 악보에 정밀하게 수렴해 들어간다.
조심성은 ‘바다’의 제1곡 ‘새벽부터 정오까지 바다’에서부터 드러난다. 여명이 걷히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의 세부 단계를 작곡가는 다양한 템포로 구비해뒀다. 그런데 제1곡 말미에서 세 번의 악센트가 이글거리는 한낮의 태양이라 하기에는 다소 약한 느낌이다. 템포가 너무 늦어 해가 쉬이 뜨지 않고, 수면 위 눈부신 태양빛도 기교를 억제해 잘 보이지 않는다.
라벨의 ‘어미거위’는 사방에서 튀어오르는 아름다운 음향이 백미다. 주 테마를 담당한 관악기들이 까불고 익살스러워져야 하는 이유지만 재량을 마음껏 드러내지 못한다.
이 점은 ‘라 발스’에서도 두드러진다. 리듬감은 듣고 있으면 들썩들썩 몸을 맡기고 싶을 만큼 제대로 표현했다. 그러나 늘어질 땐 늘어지고 조일 땐 확 조이면서 리듬을 가지고 노는 느낌을 주는 명반과 달리 진폭이 낮아 수수하다.
현악기의 두께와 결은 곱고 풍성하다. 내지르는 힘이 약하고 무언가에 억눌린 듯 제 기량을 맘껏 드러내지 못하는 관악기가 아쉽다. 서울시향 관악기 파트가 원래 가지고 있던 한계를 드러낸 건지도 모른다.
정명훈은 프랑스 특유의 몽롱하면서 나른하고 다채로운 색감을 본능적으로 파악해 연주에 녹여냈다. 이 점에서 그는 타고났지만 이 음반을 명반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기엔 부족하다. /김경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