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7.14 03:04 | 수정 : 2011.07.14 09:02
2년 전만 해도 관객 달랑 9명, 존폐위기 속 아슬아슬 생존…
대부도에 짐 푼 지난달부터 평일 400명 주말 1000명 꽉차, "내년엔 광양 세계서커스 주관"
무대 위에 외줄이 쳐졌다. 소년 곡예사는 볼펜 굵기의 그 '길'에서 외발 자전거를 탔다. 양팔을 허공으로 뿌리며 머리만으로 물구나무를 서는 순간도 있었다. 묘기는 끝나지 않았다. 소년은 극한의 균형을 시험하겠다는 듯 줄을 흔들었다. 출렁이는 외줄 위에서 거꾸로 일어서는 것이었다.
지난 10일 오후 경기도 안산 대부도의 방아머리 문화공원. 2009년 11월 추위가 닥친 서울 청량리 수산시장에서 관객 9명을 놓고 공연하던 그 동춘서커스가 아니었다. 천막극장의 빨간 플라스틱 의자(400석)는 거의 만석이었다. 코흘리개부터 백발 성성한 노인까지, 대부분 가족 관객이 자리를 채웠다. 가슴 철렁한 곡예를 끝막음할 때마다 박수와 환호성을 보탰다. 거칠고 무표정했던 단원들의 얼굴에도 봄날 같은 웃음꽃이 피었다.
국내 최장수 공연예술단체인 동춘서커스가 부활했다. 신종플루로 지역축제가 된서리를 맞고 관객이 급감하면서 존폐 위기에 놓였던 동춘은 대부도에 짐을 푼 지난달부터 안정 궤도에 올라섰다. 박세환(68) 단장은 "평일에 하루 300~400명, 토·일요일엔 1000여명씩 손님이 온다"면서 "포기할 핑계만 찾고 있었는데 다시 뛸 용기가 생겼다"고 했다.
이날 서커스는 대중적이고 어느 정도 깊이도 있었다. 무대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사회자의 멘트와 함께 수직의 철봉으로 열렸다. 곡예사들은 8m 높이의 기둥에서 몸의 탄력만으로 상하 이동했다. 이어진 공중 실크 무용은 태양의서커스의 한 장면과 겹쳐졌다. 여성 곡예사의 위태로우면서 서정적인 동작이 조명, 음악과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몸의 무늬를 찍어냈다.
동춘서커스는 1925년 박동춘(朴東春)이 전남 목포에서 조선 사람 30여명을 모아 창단했다. 연극·쇼·서커스를 한 무대에 올리면서 몸집을 불려나간 동춘은 1960년대에 단원이 270명에 이를 만큼 전성기를 달렸다. 허장강·구봉서·서영춘·남철·남성남·장항선씨 등이 동춘을 거쳤다. 하지만 1970년대 TV 드라마에 관객을 빼앗기고 1980년에 동춘의 상징인 코끼리 제니가 죽으면서 급격히 쇠락했다.
"여기 몸담은 지 50년인데 2009~2010년만 한 위기는 없었습니다. 하루 공칠 수는 없으니 열 사람 놓고도 공연은 올렸습니다. 김연아가 아무것도 안 하고 석 달 놀아봐요. 몸이 굳습니다. 레미콘처럼 계속 돌려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갈증을 느꼈는지 박 단장은 깡통 주스를 단숨에 들이켰다. 7000만원을 투자해 새로 샀다는 흰 천막극장 안으로 관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관람료는 대인 2만원, 소인 1만2000원.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된 동춘은 단원 15명이 노동부로부터 매월 93만원씩 지원받고 있다.
공사장 잡역부나 야간업소로 흩어졌던 단원들도 복귀했다. 현재 단원은 45명(25명은 중국인). 20명으로 오그라들었던 2009년에 비하면 상황이 나아졌다. 하지만 동춘이 보유한 35가지 묘기 중 고전적인 의미의 공중그네는 없었다. TV에 출연하기도 한 동춘의 처녀 곡예사 김꽃님이 몇 년 전 '사회'로 간 다음부터다. 2003년 만났던 꽃님이는 "밖에서 화장과 네일아트를 배우다 박수 소리가 그리워 다시 돌아왔지만 얼마나 오래 버틸지 모르겠다"고 했었다.
지난 10일 오후 경기도 안산 대부도의 방아머리 문화공원. 2009년 11월 추위가 닥친 서울 청량리 수산시장에서 관객 9명을 놓고 공연하던 그 동춘서커스가 아니었다. 천막극장의 빨간 플라스틱 의자(400석)는 거의 만석이었다. 코흘리개부터 백발 성성한 노인까지, 대부분 가족 관객이 자리를 채웠다. 가슴 철렁한 곡예를 끝막음할 때마다 박수와 환호성을 보탰다. 거칠고 무표정했던 단원들의 얼굴에도 봄날 같은 웃음꽃이 피었다.
국내 최장수 공연예술단체인 동춘서커스가 부활했다. 신종플루로 지역축제가 된서리를 맞고 관객이 급감하면서 존폐 위기에 놓였던 동춘은 대부도에 짐을 푼 지난달부터 안정 궤도에 올라섰다. 박세환(68) 단장은 "평일에 하루 300~400명, 토·일요일엔 1000여명씩 손님이 온다"면서 "포기할 핑계만 찾고 있었는데 다시 뛸 용기가 생겼다"고 했다.
이날 서커스는 대중적이고 어느 정도 깊이도 있었다. 무대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사회자의 멘트와 함께 수직의 철봉으로 열렸다. 곡예사들은 8m 높이의 기둥에서 몸의 탄력만으로 상하 이동했다. 이어진 공중 실크 무용은 태양의서커스의 한 장면과 겹쳐졌다. 여성 곡예사의 위태로우면서 서정적인 동작이 조명, 음악과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몸의 무늬를 찍어냈다.
동춘서커스는 1925년 박동춘(朴東春)이 전남 목포에서 조선 사람 30여명을 모아 창단했다. 연극·쇼·서커스를 한 무대에 올리면서 몸집을 불려나간 동춘은 1960년대에 단원이 270명에 이를 만큼 전성기를 달렸다. 허장강·구봉서·서영춘·남철·남성남·장항선씨 등이 동춘을 거쳤다. 하지만 1970년대 TV 드라마에 관객을 빼앗기고 1980년에 동춘의 상징인 코끼리 제니가 죽으면서 급격히 쇠락했다.
"여기 몸담은 지 50년인데 2009~2010년만 한 위기는 없었습니다. 하루 공칠 수는 없으니 열 사람 놓고도 공연은 올렸습니다. 김연아가 아무것도 안 하고 석 달 놀아봐요. 몸이 굳습니다. 레미콘처럼 계속 돌려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갈증을 느꼈는지 박 단장은 깡통 주스를 단숨에 들이켰다. 7000만원을 투자해 새로 샀다는 흰 천막극장 안으로 관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관람료는 대인 2만원, 소인 1만2000원.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된 동춘은 단원 15명이 노동부로부터 매월 93만원씩 지원받고 있다.
공사장 잡역부나 야간업소로 흩어졌던 단원들도 복귀했다. 현재 단원은 45명(25명은 중국인). 20명으로 오그라들었던 2009년에 비하면 상황이 나아졌다. 하지만 동춘이 보유한 35가지 묘기 중 고전적인 의미의 공중그네는 없었다. TV에 출연하기도 한 동춘의 처녀 곡예사 김꽃님이 몇 년 전 '사회'로 간 다음부터다. 2003년 만났던 꽃님이는 "밖에서 화장과 네일아트를 배우다 박수 소리가 그리워 다시 돌아왔지만 얼마나 오래 버틸지 모르겠다"고 했었다.
동춘의 스타로 꼽히는 저글링 박(본명 박광환·35)도 2년 만에 천막극장으로 돌아왔다. 이날도 그는 빠르고 유머러스한 저글링으로 큰 박수를 받았다. 입으로 탁구공을 쏘아 올리는 저글링, 꼬마 관객을 묘기의 일부로 참여시키는 대목에서 대중은 환호했다. 저글링 박은 "20년을 보낸 곳이라 천막극장이 편하다. 관객이 늘어 힘이 나고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천막극장은 일터이자 집이다. 무대 뒤에는 컨테이너들이 10여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단원들의 살림집이다. 한 컨테이너를 열자 컴퓨터와 TV, 냉장고가 보였다.
기사회생한 동춘은 오는 11월 말까지 대부도에서 공연한다. 내년 5~8월에는 러시아 볼쇼이 등 12개국 서커스가 초청돼 전남 광양에서 열리는 세계 서커스 대회를 주관한다. 유랑은 끝이 없다. 관객을 맞거나 떠나 보낼 때 틀어주는 음악은 예나 지금이나 애처로웠다.
"어디서 무엇 하다 이제 왔나요/ 당신을 기다렸어요~"(장윤정의 '꽃')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아리랑)….
천막극장은 일터이자 집이다. 무대 뒤에는 컨테이너들이 10여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단원들의 살림집이다. 한 컨테이너를 열자 컴퓨터와 TV, 냉장고가 보였다.
기사회생한 동춘은 오는 11월 말까지 대부도에서 공연한다. 내년 5~8월에는 러시아 볼쇼이 등 12개국 서커스가 초청돼 전남 광양에서 열리는 세계 서커스 대회를 주관한다. 유랑은 끝이 없다. 관객을 맞거나 떠나 보낼 때 틀어주는 음악은 예나 지금이나 애처로웠다.
"어디서 무엇 하다 이제 왔나요/ 당신을 기다렸어요~"(장윤정의 '꽃')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아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