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7.04 03:12 | 수정 : 2011.07.04 17:21
‘한국형 엘 시스테마’ 미국·스코틀랜드 전문가에게 듣다
베네수엘라의 '기적'은 한국에서도 재현될까? 36년 전, 오케스트라 합주로 '거리의 아이들'을 바꾼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의 '엘 시스테마(El Sistema·베네수엘라의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무상 음악교육 프로그램)'가 국내 교육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올해부터 교육과학기술부는 2012년까지 학생오케스트라 운영학교를 100개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꿈의 오케스트라’라는 명칭으로 작년부터 전국 8개 지역을 중심으로 오케스트라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른바 '한국판 엘 시스테마' 프로젝트인 셈이다. 지난 10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한 ‘한국형 엘 시스테마의 개발과 확산’ 세미나를 위해 방한한 미국 '하모니 프로그램' 총괄감독 앤 피츠기본(Ann Fitzgibbon)과 스코틀랜드 '시스테마스코틀랜드' 총괄감독 니콜라 킬리언(Nicola Killean)을 만나 각국의 사례와 '한국판 엘 시스테마'의 미래에 관해 물었다.
―각국의 프로그램과 총괄감독의 역할을 소개한다면
피츠기본= “‘하모니 프로그램’은 엘 시스테마 USA와 뉴욕시 정부, 뉴욕시립대학이 후원하는 미국의 청소년 음악 복지사업이다. 음대생이나 음대를 갓 졸업한 학생들을 강사로 훈련시켜 경제적 소외계층의 자녀에게 매일 음악 레슨 및 오케스트라 합주를 지도한다. 총괄감독으로서 교육 커리큘럼 개발, 강사 트레이닝, 예산 편성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킬리언= “‘시스테마스코틀랜드’ 또한 미국 하모니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음악을 통해 스코틀랜드의 빈민층 자녀를 돕는 프로그램이다. 대표적으로 스코틀랜드 내 낙후지역인 ‘라플록’에서 0~14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빅 노이즈 어린이 오케스트라’가 있다.”
―‘한국형 엘 시스테마’에 대해 어떻게 관측하나
킬리언= “아직 시작단계다. 하지만 한국의 장점은 국가에서 먼저 관심을 보여 연관 부처의 주도로 프로그램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토양이 잘 갖춰져 있다. 엘 시스테마 창립자 아부레우 박사는 ‘이 시스템이 스스로 움직이게 될 때까지 30년이 걸렸다’고 했다. 부처 간 정책 비전을 공유하고 전문 인력 양성, 콘텐츠 개발 등 분야별 네트워크 구축에 집중해야 한다.”
―오케스트라 합주는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나
킬리언= “어린아이들에게 악기를 쥐여주면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며 이리저리 두드려보고 소리를 내본다. 악기 교육과 합주가 뇌의 다양한 부분을 자극해 타 과목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정부 주도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한국의 경우, 대학도 지원그룹에 포함해 대입과 엘 시스테마와 연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겠나.”
피츠기본= “엘 시스테마는 36년간 전 세계에서 그 효과가 입증된 프로그램이다. 특히 오케스트라는 개인의 기량보다 합주의 완성도를 중시한다. 산만한 아이들도 한 달 안에 연주에 집중하기 시작하더라. 이를 통해 아이들이 자기절제와 책임감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을 한국 학부모에게 전하고 싶다.”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의 경우, 경제적 지원이 우선이지 않겠나
킬리언= “내가 만난 소외계층의 학부모나 아이들은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 뭔지 몰랐다. 그래서 태도를 긍정적으로 바꾸고 리더십을 기르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경제적 지원에 앞서 공동체에 대한 소중함을 알려주는 것이 엘 시스테마의 역할이다.”
피츠기본: “형편이 어렵다고 학부모들이 다 무관심하진 않더라. 오히려 더 적극성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엘 시스테마’ 도입기,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피츠기본= “항상 학생이 최우선이 돼야 한다. 동기를 갖고 큰 꿈을 갖게 지도해달라. 하모니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것은 ‘재미’다. 무리하게 음악 이론을 가르치거나 연주기술 테스트는 금물이다. 공동체의 비전과 가치를 공유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킬리언= “교사의 자질도 중요하다. 음악감독의 역할이 크다. 아이들의 연령별·수준별로 어떻게 접근할지 결정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학생의 동기뿐 아니라 교사들에게도 충분한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