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대한민국이 우리 음악 원천"

  • 김경은 기자

입력 : 2011.06.29 00:30

대관령국제음악제 공동감독, '정트리오'의 명화·경화 자매
"어렸을 땐 많이 싸웠어요… 하지만 지금은 고난 나눈 동지
가장 아름다운 음악제 만들것"

"미국 유학 가기 전에 언니랑 많이 싸웠어요. 자매가 자라면서 한 번도 안 싸웠다면 거짓말이잖아요?"(정경화) "경화가 앙앙 대들었지요. 미국 가서부터는 말을 잘 들었지만."(정명화)

1961년 겨울 나란히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자매는 50년 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악축제의 하나인 대관령국제음악제의 공동 예술감독이 되어 고국 팬 앞에 섰다. 첼리스트 정명화(67·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63·미국 줄리아드음대 교수)다. 두 사람에게도 공동 예술감독은 처음이다. 음악사에서도 자매가 한 축제를 맡은 예는 낯설다. 28일 기자간담회에 앞서 본지와 만난 자매 예술감독은 "어릴 땐 투닥투닥 잘도 싸웠지만 음악인이 된 후론 활 놀림부터 비브라토까지 고난을 나누며 동지로 살았다"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제를 만들겠다"고 했다.

한여름에도 서늘한 바람이 일렁이는 대관령국제음악제의 공동 예술감독을 맡은 정명화(왼쪽)·경화 자매. /대관령국제음악제 제공

올해 8회째인 대관령국제음악제는 어린아이로 따지면 초등학교를 다닐 나이가 된 셈이다. 명화씨는 "연주자들 실력이나 프로그램은 어른에 가까울 정도로 수준이 높다"고 했다. 음악제 주제는 '빛이 되어―일루미네이션(ILLUMINATION)'. 서울 언니(명화)와 뉴욕 동생(경화)이 날마다 통화하며 머리를 맞댔다. 프로그램도 모차르트·멘델스존·쇼팽·슈베르트 같은 거장이 인생 막바지에 탄생시킨 실내악곡 걸작들로 모았다. 두 예술감독을 포함해 카리네 게오르기안(첼로), 리처드 스톨츠만(클라리넷), 로베르토 디아즈(비올라) 등 국내외 최정상 음악가 45명이 향연을 벌인다.

실내악곡에 무게중심을 둔 데에는 지난 5월 세상을 뜬 어머니 이원숙 여사의 영향이 컸다고 했다. 자매는 지난 4일 어머니가 묻힌 뉴욕 묘지에서 소박한 음악회을 열었다. 손자·손녀 1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경화씨의 아들이 피아노를 치고, 고(故) 정명소씨의 아들이 추모예배를 인도했다. 경화씨는 "그 모습을 보며 어머니가 우리 음악의 원천이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자매는 "우리는 어느날 갑자기 예술감독을 맡게 된 게 아니다. 어머니가, 대한민국이, 우리에게 준 사랑을 아름다운 화음으로 세계에 내놓아 보답하는 거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주는 '내리사랑'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번 음악제에서 경화씨는 6년 만에 실내악 무대에 오른다.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 명화씨와 함께 이원숙 여사가 참 좋아했던 브람스 '피아노 트리오 1번'을 연주한다. "공동 예술감독으로 선임됐을 때 어머니는 편찮으셔서 소식을 알지 못했어요. 마음이 아팠는데…." 경화씨는 "음악제가 끝나고 나면 어머니가 좋아한 곡만 모아 연주하는 리사이틀을 열 거예요. 언제? 하나님이 뜻하실 때"라고 했다.

명화씨는 "세계 어디를 가도 대관령처럼 아름다운 곳은 없다"며 "해발 700m 그곳에 갈 때마다 에너지를 느끼고 와요. 모기도 없고요!"라며 웃었다. 대관령국제음악제는 7월 24일부터 8월 13일까지 평창 일대에서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