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음악은 달항아리… 텅 비었지만 꽉 차"

  • 김경은 기자

입력 : 2011.06.28 03:19 | 수정 : 2011.06.28 03:29

가야금 인생 60년, 창작 인생 49년… 콘서트 '달항아리' 여는 황병기 명인
내 작품은 서로 비슷한게 전혀 없어… 지금은 아마 때려죽여도 못 쓸 것

"제 음악은 음료로 따지면 청량음료가 아니라 그냥 생수예요. 깨끗하고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서 넉넉한. 달항아리를 처음 본 순간 딱 제 음악 같았던 건 그 때문이에요. 60년 가꿔온 음악 세계가 텅빈 항아리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지요."

가야금 명인 황병기(75)씨가 7월 13일 오후 8시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가야금 인생 60주년, 창작 인생 49주년을 기념하는 가야금 콘서트 '달항아리(Moon Jar)'를 연다. 콘서트에는 '숲' '영목' '고향의 달' '미궁' '산운' '하마단' 등 그의 대표작이 나온다. 무대 뒤 스크린에는 달항아리와 자연을 담은 영상이 흐를 예정이다.

'안성맞춤'이라는 말은 잘 빠진 놋그릇에서 나온 말이지만, 달항아리와 황병기의 만남이야말로 '안성맞춤'에 해당할 듯하다. 미국 음악 전문지 '스테레오 리뷰'가 "절묘한 음색과 아름다운 선율은 하이 스피드 시대의 현대인들에게 정신적인 해독제로서 특별히 가치 있는 음"이라 평했듯, 그의 곡은 달항아리의 여백미와 맞춤으로 통한다.

27일 달항아리가 있는 서울 청담동 광주요 매장에서 만난 황씨는 "제대한 군인이 '야간 담력 훈련 때 조교가 미궁을 틀어줬는데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다'고 하더라"며 빙긋 웃었다. 1975년 국립극장에서 초연된 18분 길이의 미궁은 가야금 소리에 울고 웃는 사람의 목청이 섞여 있는 독창적인 작품. 당시 연주회장에서는 연주를 듣다 여성 관객이 실신했고, '미궁을 세 번 들으면 죽는다'는 괴담까지 떠돌았다. 정작 그는 "내 음악의 본질은 슬픔"이라며 "사람이 진짜 기쁘면 눈물이 복받치듯 웃음 뒤에 숨은 눈물을 포착하려 했다"고 말했다.

황씨는 6·25 때인 1951년 피란지 부산에서 경기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학교 근처 고전무용연구소에서 처음으로 가야금 소리를 듣고 반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던 해인 1959년 서울대에 국악과가 생기면서 가야금 강사로 4년간 일했고, 1974년 이화여대 국악과 교수가 됐다.

극도로 절제된 움직임에서 나오는 황병기씨의 가야금 소리는 텅 비어있는 듯하면서도 꽉 찬 달항아리와 닮은 데가 있다.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국악 작곡을 시작한 건 서울대 국악과 강사로 있을 때인 1962년이다. "1950년대 후반부터 서양 현대음악에 완전히 꽂혔어요. 보니까 전통을 그대로 잇는 건 골동품이지 전통이 아니더라고요. 말 그대로 전(傳)하고 통(通)해야 새롭게 거듭나는 거였지요."

처녀작은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에 곡을 붙인 가곡(歌曲)이었다. 가사·시조와 더불어 우리나라 전통 성악곡의 하나인 가곡은 선비들만 부르던 고급 '노래'다. 시조의 시를 5장 형식으로, 피리·가야금·해금 등의 반주에 맞춰 부른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는 문장은 옛날부터 내려오던 시 같은데 우리 고전문학 그 어디에도 비슷한 구절이 없어요. 전통의 느낌이 들면서도 독창적인 거였죠. 무조건 독창적인 걸 쓰자. 그때부터 다짐한 겁니다."

그 후 황씨는 첫 가야금 곡 '숲'을 시작으로 외국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가을', 자식(작품)들 중 가장 많이 연주되는 팔자를 타고 났다는 '침향무', 신라시대 비단길을 음으로 그려낸 '하마단' 등 많은 곡을 발표했다. 작품들을 두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비슷한 게 전혀 없다. 들을 때마다 '저걸 어떻게 썼을까, 지금은 때려죽여도 못 쓰겠다' 싶은데…."

그가 최근에 작곡한 곡은 '낙도음(樂道吟)'이다. "공자가 나이 칠십이면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 즉, 자기가 하고싶은 대로 해도 전부 법도에 맞더라고 했잖아요? 이 곡은 늙은이가 술 마시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해도 전부 법에 맞는다는 걸 나타낸 곡이에요. 음악을 들으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할 거예요."

"나는 젊었을 때부터 꿈도, 갖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없었어요. 평범하게 살고 싶었지요. 남의 눈에 안 띄게…." 그는 인터뷰 내내 소리 내어 웃지도, 큰 몸짓을 하지도 않았다. "내 곡은 어떤 곡이든지 다 슬픔이 들어 있어요. 예술의 본질은 슬픔입니다. 눈물이 나올 정도가 돼야 하지요." 그가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기자를 향해 아주 엷은 미소를 지었다.

▶달항아리=7월13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 (02)2005-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