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그 누가 백건우만큼 리스트를 표현할 수 있을까

  • 장일범·음악평론가

입력 : 2011.06.26 22:59

백건우 리스트 200주년 연주회
두차례 콘서트 모두 클래식 팬 홀릴 듯 압도적

리스트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두 번의 콘서트를 준비하며 백건우는 먼저 수많은 리스트의 작품을 프로그램에 올렸다 지웠다. 그리고 30여년 만에 다시 연주하는 리스트를 위해 그는 외부와 단절된 채 리스트에 집중했다. 19일 열린 '문학 그리고 피아노'는 리스트 작품이 얼마나 파워풀한 터치와 강렬한 표현력을 요구하는지를 체감할 수 있었던 압도적 공연이었다.

크레디아 제공

19일 공연의 템포는 빠르지 않은 편이었는데 그 덕분에 모든 음표와 화성의 골격과 내용물을 청중에게 정확하게 들려줬다. '메피스토 왈츠 1번'에서 들려준 강력한 터치는 압도적이었다. 백건우는 밝은 빛과 암흑을 교차시키며 기막힌 화성의 향연을 노래했다. 시적이고 종교적인 선율 중 사랑의 찬가와 2개의 전설에서는 리스트의 깊은 신앙심을 기도하듯 표현하면서 '새에 포교하는 앗시시의 프랑소아'에서는 새에 대한 섬세한 표현을, '물위를 걷는 파올라의 성 프랑소아'에서는 구원의 빛과 희망으로 믿음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쇼팽 녹턴풍의 '위로' 3번에서는 침착하고 고요한 가창적인 톤으로 아름다운 곡을 들려주며 휴식을 선사했다. 초인적인 명연기로 공연이 모두 끝나자 갑자기 암전이 됐다. 영화 '시'의 주인공 미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인 윤정희씨가 원래 '프라일리그라트의 사랑의 꿈'의 시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를 읽었고, 바로 백건우가 리스트의 그 곡을 연주했다. '문학과 피아노'에 어울리는 피날레였다.

6일 후인 25일 '후기작품 그리고 소나타' 콘서트. 비장한 표정으로 무대에 나타난 백건우의 집중력은 청중을 긴장케했다. 그는 곡이 끝나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며 리스트 결정전을 치르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구슬픔이 밀려오는 '5개의 헝가리 민요'에서는 리스트의 음악적 배경이 헝가리임을 웅변했다. 작은 곡인 '슬픈 곤돌라2'로는 피아니시모의 아름다움에서 시작, 점층법으로 거대한 세계를 그려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로망스'에 이은 '스케르초와 행진곡'은 엄청난 테크닉과 끊임없는 포르테로 청중을 윽박질렀다.

이번 연주회를 통해 백건우는 '헝가리안 랩소디' '사랑의 꿈' '메피스토 왈츠' 같은 리스트의 곡은 빙산의 일각이며 '리스트'라는 대륙은 여전한 탐험의 대상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콘서트 말미를 장식한 '소나타 b단조'는 파괴와 창조라는 두 날개로 날았던 리스트의 자유로움과 경건함을 그대로 보여줬다. 연주가 끝났음에도 백건우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청중도 그저 기다렸다. 숭고한 침묵의 시간이 공유되고 있었다. 이런 경험이 언제였던가.

두 공연을 본 일본의 피아노 음악 평론가 사토루 다카쿠는 평했다. "세계의 그 어떤 피아니스트도 이처럼 리스트를 꿰뚫는 프로그램을 연주한 적도, 이처럼 빼어나게 연주할 수도 없었다. 오로지 백건우 외에는." 한국 클래식 팬들은 2주간 리스트에게 사로잡혔고, 백건우는 몸과 영혼을 던져 리스트를 예술의전당 무대에 세웠다.